삶의 향기/부자되기

돈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원칙(2)-절제(펌)

gracegracr 2011. 11. 22. 11:15

만약 당신이 외국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오면서 소중한 재산을 절친한 사람에게 맡겼는데 돌아와 보니 그 사람이 재산을 땡전 한 푼 안 남기고 흥청망청 다 써버렸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실망스러워 잠도 오지 않을게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에게 다시는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잃어버린 돈을 다 받아내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재산을 맡기시고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하였지만 이를 까마득히 잊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흥청망청 다 써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겠는가? 외국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가버려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자 소유자의 존재감을 잊어버리고 주인의 재산에 손을 대는 나쁜 관리인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수중에 들어 온 돈을 제 멋대로 흥청망청 쓰는 당신도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적은 돈을 맡겨 먼저 테스트를 해보고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더 큰 돈을 맡겨주신다. 적은 돈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더 큰 돈을 맡겨주시는 것은 고사하고 적은 돈마저 회수해 버리실 것이다.

탐욕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이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누구나 욕심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도에 지나친 욕심인 탐욕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성품이며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무너뜨리는 사악한 요인입니다. 성경에는 탐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나열하며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다. 값비싼 외투와 금덩이에 눈이 멀어 아이성 전투를 패퇴하게 한 아간, 나아만 장군이 가져온 선물에 눈독을 들이다가 급기야는 문둥병에 걸린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하나님의 능력을 돈 주고 사려했다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은 마술사 시몬, 큰 재산을 보자 탐욕이 생겨 성령을 속이고 죽음을 면치 못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등 성경을 찬찬히 찾아보면 적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 탐욕을 싫어하시는 큰 이유는 사탄의 노예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재물의 유혹에 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탐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자녀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등 뒤에 숨어 사주하는 사탄을 싫어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마술사 시몬을 꾸짖으면서 사탄의 흉계를 직접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탐욕을 싫어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탐욕은 하나님보다 돈과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단어인 질투까지 언급하시며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으로 정의하셨다. 탐욕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대상을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녀들이라면 죄다 내다버려야 것들임에 틀림없다.

   딤후 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자신과 돈을 사랑하는 시대로 점차 흘러가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이유도 쾌락을 얻는 수단으로 돈만 한 게 없기에 말이다. 그래서 탐욕스럽게 돈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결혼배우자의 최우선조건은 경제력이며 직업조차 없는 백수라 할지라도 부모재산으로 값비싼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돈을 물 쓰듯 하면 모두들 부러워하며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한다. 설문조사에서 평생 쓸 돈을 쥐어준다면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버리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실 돈만 쥐어주면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살인까지 해주는 마당에 그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을 위해 인생을 바치고 영혼을 팔아 버리고 있다. 모두들 탐욕에 휩싸여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씁쓸한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이 탐욕이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방탕은 탐욕의 또 다른 모습이다.

탐욕스러움은 돈을 게걸스럽게 모으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이성을 잃고 여기에만 몰두한다면 탐욕스런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게 방탕함이다. 방탕은 돈으로 쾌락을 사는 모든 행동에서 보게 된다. 20대 여성들이 빚을 지는 가장 큰 원인은 충동구매로 인한 과소비이다. 시간만 나면 하릴 없이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쇼핑센터를 전전하며 사람들이 입은 옷과 가방, 구두에만 정신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면 이미 반쯤은 빠져든 셈이다. 여기에 경품이나 할인행사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신용카드를 빼어들고 소리 지르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이렇게 사둔 상품이 집안 곳곳에 빼곡하다. 수십 켤레의 구두가 신장에 넘치고 있고 수백 장의 옷이 서랍장이나 붙박이장, 행거 등 어디든지 빽빽하다. 게다가 사용하지 않은 가방은 왜 이리 많은 지 정신이 없다. 이런 부모를 만난 자녀들의 방에 들어가 보면 장난감으로 산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다용도실은 이미 만원이고 베란다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젊은 청년이 취직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차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도 고가의 최신형 SUV차량이다. 찻값이 연봉의 두 배지만 대출을 얻어 할부로 사기에 가증하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값비싼 오디오와 비디오 시설, 최신형 내비게이션, 차량용 블랙박스, 경보장치 등으로  내, 외관을 막론하고 차를 고급스럽게 장식한다. 그리고 주말이면 차를 몰고 여자 친구를 옆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떠난다. 그래서 저축할 수가 없다. 월급을 타면 이미 바닥이며 카드한도가 넘쳐 돌려막기로 이자를 내야 할 형편이다. 어디 그 뿐일까? 휘황찬란한 유흥가의 밤거리를 휘저으며 지불해야하는 술값이며 음식 값은 자신의 몫이고 옷이나 가방 등으로 치장하는데도 역시 명품을 고집한다. 방탕의 끝은 한이 없다. 신용카드가 한도초과로 더 이상 사용이 안 되고 지갑에 먼지가 풀풀 날릴 때까지 계속된다.

청년들의 이 같은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소비행태를 배웠을까? 세상에서 배우고 친구와 선배들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청춘스타들의 화려한 의상이 부럽고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자신도 따라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든다. 백화점과 홈쇼핑 몰의 광고책자도 한 몫 거들 것이며 주변 친구나 선배들이 소비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 방송이나 언론매체는 인기를 끌기위해 화려한 의상과 눈부신 생활을 보여주는 아이돌 스타가 필수적이다. 친구나 선배들도 이들로부터 화려하며 방탕한 소비행태를 배웠을 게다. 부모를 비롯해서 인생선배들의 가르침과 조언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그들도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진지하게 가르쳐주지 않다가 이미 훌쩍 커버린 다음에 통제하려 들기만 한다면 자녀들의 차가운 반항심만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청년들의 방탕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기에 세상의 바다에 쉽게 빠져들게 되지만 이를 막는 것은 어린 시절의 고된 훈련과 교육뿐이다.

자녀에게 절제를 가르치라.

필자가 어렸을 때는 너나없이 가난했기 때문에 방탕할 수가 없었다. 형이나 언니가 입던 옷을 대물림하고 헤어진 옷도 천을 덧대고 꿰매서 입고 다녔다. 그래도 창피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게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절약을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었다. 그렇게 자란 세대들은 어린 시절에 이미 절제의 습관이 저절로 붙어 방탕하게 소비하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난하기만 했던 시절을 알지 못하던 신세대들은 비교적 풍부한 시대에 태어나 부모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부족한 것을 모르고 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원하면 다 들어주는 부모덕에 장난감 왕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말만하면 언제든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원하는 학용품이 손에 들려졌다. 이렇게 자란 청년들이 필연적으로 방탕한 소비행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소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청년시절을 지나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우울하고 답답한 중년을 맞이할 것이며 마침내 고통스러운 악성부채로 인해 어두운 인생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 책임은 물론 본인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지만 부모의 책임 또한 작다고 하기 힘들다. 부모가 자녀를 책임질 수 있는 어린나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의 힘으로도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그 능력의 중심에 절제의 성품이 포함되어있음은 물론이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절제란 말은 영어로 self-control이다. 즉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는 성경말씀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생각이 들어 찬 성인에게도 절제를 가르치는 것이 어려운데 철부지 아이들에게 절제를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산을 넘지 않고는 자녀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없기에 힘들더라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이 돈을 벌어들인 경험이 없기에 돈을 번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시시콜콜하게 작은 일부터 부모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길바닥이나 광장의 한 복판에 뒹굴면서 떼를 쓰는 민망한 광경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장난감 등의 요구사항을 부모가 들어주지 못해 나름대로 최고의 실력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 시작하지 않았겠지만 부모의 항복을 받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학습효과를 통해 이미 체득한 것이 분명하다. 부모가 창피해하고 곤혹스럽게 만들면 만들수록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된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자녀가 그런 과도한 행동까지 보여주었다는 것은 부모의 원칙 없는 행동이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자녀가 바라는 것이 옷이든, 장난감이든 용돈이든 상관없이 한 번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이나 한달치의 용돈을 받은 아니가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며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처음에는 다 써버리고 다시 손을 벌릴 게 분명하다.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조로 부탁하기도 하다 효과가 없으면 무력시위라도 벌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행위를 들어주다보면 끝도 없이 계속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다시 요구하면 들어준다는 학습효과가 들어서게 되면 한달치나 일주일 치의 용돈의 개념이 없어지게 된다. 정기적으로 책정된 용돈은 그냥 날짜가 되면 주는 용돈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 용돈을 써버린다면 정해진 기간이 될 때까지는 더 이상의 지급이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스스로 절제하는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이다. 물론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녀는 감정을 자극하는 보호본능이 있으므로 불쌍한 생각에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부모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자녀의 형통한 인생을 생각한다면 많은 재산보다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만고불변의 빛나는 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백만장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엄격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책정한 원칙은 매우 단호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청소년 시절부터 알바 등을 통해 노동의 어려움을 손수 배우게 하거나 적은 용돈으로 절제의 능력을 학습시킨다. 아무리 부모가 백만장자라도 자녀가 방탕하다면 그 재산은 한강에 돌 집어 던지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최고급의 옷이나 학용품, 장신구 등 또래의 친구들에게 맞지 않거나 너무 고급스러운 것을 자녀들에게 해주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야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으며 어릴 때부터 부모의 재산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졸부가 된 부모들이 자녀를 너무 고급스럽게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니 참 답답한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재정적인 능력도 없으면서 졸부가 벌이는 천민자본주의 꼴사나운 행태를 따라하는 철부지부모가 우리주변에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부모가 절제의 모범을 보이라.

자녀에게 절제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절제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예전의 우리 부모들은 가난하였기에 절제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굶고 살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어도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했고 군것질은 특별한 날이나 되어야 가능했다. 형제들이 녹아서 얼음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 께끼를 돌아가며 한 번씩 빨아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미소를 짓게 한다. 하물며 옷이나 학용품은 말해 무엇 하랴.

그렇지만 지금은 소유물들이 차고 넘쳐서 절제를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솔선수범하며 가르쳐야 겨우 자녀들이 배우는 시대이다. 부모가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전전하며 집안에 입지 않은 옷, 신지 않은 구두, 사용하지 않는 상품들이 빼곡하게 쌓아두었으면서 자녀들에게 절약하고 아끼라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과 구두로 치장하고 다닌다면 자녀에게 값비싼 최신 핸드폰이나 외제브랜드의 신발이나 가방을 사지 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사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여신도들의 옷차림과 가방, 구두를 유심히 살펴보면 예배를 드리러 왔는지 명품을 뽐내러 왔는지 구별이 안 될 지경이다. 이를 보고 가난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하나님도 싫어하실 것이고 교회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구제에 사용할 돈이 없다고 항변하고 외면하고 있다면 실로 가증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지금 소유하는 차로 바꾸기 전의 차는 꼭 15년을 타고 폐차를 시켰다. 그냥 출퇴근만 하면 계속 탈수도 있었지만 하루 종일 영업을 하며 배달을 하기에 주행거리가 엄청난 탓으로 엔진오일을 너무 많이 먹어 결국 적당한 연식의 다른 중고차로 바꾸었다. 그런데 주변에는 수입도 별로 없으면서 럭셔리한 중대형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도 사용할 때보다 주차장에 먼지를 쓰고 있을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것보다 더 놀라는 일들은 10평을 겨우 넘는 임대아파트 주차장에도 값비싼 SUV나 중대형차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차들은 할부나 세금, 보험료, 휘발유 등을 포함하는 유지비는 최저생계비를 넘는다. 그런 차를 소유하면서 절제를 가르치기는 힘든 일이다. 부모가 오래된 휴대폰을 그냥 쓰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자녀들은 별로 없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따라하는 것이다.

   마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성경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마다 다 얻게 되기라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자주 접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기도의 내용이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다면 아무리 희생적인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열매가 맺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은 그 유명한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탐욕스럽게 얻기는 원하는 것을 모두 구하라고 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 일용할 양식은 생활에 필요한 재물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규모라기보다는 절제의 성품이 밴 상태에서 필요한 재물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삶에 필요한 만큼의 재물은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약속을 해주셨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절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내려오는 조건이기도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이 땅의 삶은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무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돈이 주는 쾌락은 놀라운 것이기는 하지만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는 이 시대 최고의 우상임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돈보다 하나님을 더 섬기는 성품인 절제를 몸에 배지 않는다면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언감생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