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부자되기

돈을 사용하는 하나님의원칙(4)-소비(펌)

gracegracr 2011. 11. 22. 11:18

 돈을 벌어들이는 목적이 소비를 위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자신의 생존을 포함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사람답게 살기위한 삶을 위해서는 돈을 벌어들이고 또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고 부를 소유하게 하신 목적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상용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용도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다르기에 소비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잘못된 소비에 대한 책임을 꼭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하기 전에 사용 목적을 확인하라.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책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신 목적은 먹을 양식이 상징하는 생계를 위한 비용과 선교와 구제 등의 의로운 열매를 위한 씨앗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의 쓰임 한도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를 늘 점검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일용할 양식을 구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필요와 탐욕은 마음 깊은 곳에 들어차 있어서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래의 필요를 위해 쌓아두는 것과 탐욕을 채우려고 쌓아두는 것과도 분명한 잣대가 필요하다. 노후대책처럼 미래의 필요한 용도를 위해 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위가 되겠지만 막연하게 쌓아두는 행위는 거지 나사로가 문 앞에 살았던 집의 부자처럼 영생을 얻는 일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 입고 거주할 집을 위한 재물은 생존에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일지라도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입맛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섭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탐욕을 위해 쌓아두었다가 냄새가 나고 썩어버려 음식 쓰레기통을 채우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전 세계를 둘러보더라도 먹을 식량이 부족해서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굶어주는 이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돌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음식보다 의복은 더 낭비가 심하다. 옷장마다 유행이 지내고 패션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두 번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빼곡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남에게 떠맡기듯이 줘버리든가 버려지게 될 것이다. 물론 원시시대처럼 한두 벌의 옷만 입으며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철따라 여러 옷을 번갈아 입을 수 있겠지만 홈쇼핑이나 백화점 등에서 충동적으로 사다가 입지 않고 버려지는 옷이라면  탐욕에 빠진 심각한 증세인 탓이다. 집은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야 소유할 수 있기에 그 후유증이 만만치 많다. 우리나라 가족 수는 가구당 겨우 3명이 웃도는 수치이다. 그렇지만 적은 가족 수에도 불구하고 30평을 훌쩍 넘는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대세이다. 물론 널찍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은 좁은 집보다 편리하겠지만 구입비용과 유지 관리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유자금으로 산다면 그래도 낫겠지만 빚을 얻어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탐욕에 휩싸여 적지 않은 대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가족 수로 본다면 20평 내외의 규모가 적당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생각하며 편안함을 누리고 탐욕을 채우고 싶기에 주택구입자금이 턱없이 부족해도 일단 저지르고 싶어 한다.

요즈음 청소년들에게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과 MP3는 물론이고 유명브랜드의 옷이나 신발을 사주는 것을 생각해보라. 기능이나 품질은 별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디자인이나 고기능이 장착된 휴대폰으로 바꾸는 청소년이 즐비하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을 부모가 지불해주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구입목적은 필요가 아니라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자기만족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운동화나 의복은 똑같은 품질이라고 외국의 유명브랜드가 붙어있는 상품이라면 값이 두배로 뛰는 일은 예사이다. 물론 그 나이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친구들끼리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동료의식이 강할 때라 고급브랜드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브랜드에만 집착하는 행위는 성인이 되어서도 방탕으로 이끄는 심각한 낭비벽을 초래하게 만든다. 재정이 넉넉하더라도 필요를 이끄는 소비가 아니라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소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물론이다. 소비에 대한 이런 관점을 가정에서 부모가 심어주지 않는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소비를 하기 전에 사용목적을 점검하는 습관은 돈 걱정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자녀에게 분명히 심어주어야 할 일이다.

재정형편 안에서 소비하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동식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충분히 먹고 살만한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아무리 풍족한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과 지혜를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게으르거나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고통스런 현실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원칙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백수의 제왕 사자라고 할지라도 매번 사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냥에 실패해서 배를 곯으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은 돈이 부족하다면 빚을 내어 미리 쓰거나 불의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손쉽게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위험에 빠뜨리는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잘못되는 날에는 눈물이 쏙 빠지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부족한 재정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족한 대로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런 생활방식을 칭송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자와 판매자들은 소비자들이 구매의욕을 잃고 구매를 덜하기 시작한다면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광고를 통해 소비를 촉구하며 갖가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만들어 계속 구매하도록 애쓴다. 부족한 재정형편에 구매를 계속하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막힌다면 끔찍한 고통의 원인이 되겠지만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까지 지속하는 이유는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잠 7:21~23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위의 성경은 간사한 음녀가 무지하고 순진한 소년을 유혹하여 음란의 죄악에 빠뜨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내용이다. 물론 그 소년은 자신의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게 될지 모르고 단지 눈앞의 유혹에 마음을 뺏겨 음녀를 따라 나서지만 일단 유혹의 단물을 마시게 되면 쾌락의 수렁에 빠져 결국은 생명과 영혼을 잃게 된다. 우리 자녀인 청소년들이 무지해서 음녀의 위험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재정형편을 무시한 과도한 소비는 평생 빚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노동의 고통을 모르기에 부모의 용돈으로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그렇기에 부모의 재정형편보다 자신이 소원하는 상품을 사고 싶어 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를 앞세워 마케팅을 하고 있는 유명메이커거나, 유명 연예인이 착용하거나 사용하고 있는 명품이거나 친구사이에서 인기 있는 제품으로 아주 비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제품들이다. 돈 많은 부모를 두고 있다면 그래도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책값이나 학원비 명목 등을 둘러대어 부모를 속여서 구입해야 할 것이고 아니면 공부를 제쳐두고 알바를 해서라도 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이 어렵게 손에 넣은 상품이라도 지속적으로 만족할 수 없다. 새로운 디자인과 신기능이 장착된 신제품이 쏟아지게 마련이고, 이 역시 신세대 우상인 연예계와 스포츠스타들이 광고를 하고 주변에서 친구들이 구입하여 시선을 끌게 되면 사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으려하는 과정에서 불의한 일도 저지르게 된다.

사랑하는  자녀가 갖고 싶어 한다고 가정의 재정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다 사주게 되면 재정적인 타격도 있겠지만 절제와 자족을 배우지 않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더 큰 역경에 처하게 된다. 청소년들이 직장을 얻게 되어 수입이 들어오면 자신의 재정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의 수입을 저당 잡혀 마구잡이로 소비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치스럽게 몸을 치장하며 유흥비로 탕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고급자동차를 할부로 사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자가용은 감가상각도 높은 제품이고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아 신입사원의 수입가지고 고급 SUV을 유지하는 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도 자가용을 덜컥 사버리는 데는 평소에 가정에서 재정능력 안에서 소비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들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대비해서 꼼꼼하게 저축을 하며 준비하는 알뜰족도 있지만, 옷과 구두, 가방 등을 구입하는데 방탕하게 사용하며 럭셔리한 외식과 사치스런 휴가비로 모든 수입을 몽땅 써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 청년들은 결혼을 해서도 빚을 내어 집을 사게 되며 수입 내에서 지출하는 훈련을 받지 않아 과소비와 충동구매로 평생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구입하고 싶은 욕망을 참고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훈련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잘못된 소비행위에 대해 아무에게도 통제를 않는 때가 되면 방탕의 늪으로 빠질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의 품안에 있을 때에 가정의 재정형편 내에서 소비하는 습관을 들여 주어야 할 일이다.

계획적인 소비습관을 들이라.

소비에 일가견이 있는 전업주부들도 시장에 갈 때 구입목록을 정해 놓지 않고 갔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경품이나 할인행사 등의 유혹을 피하지 못해 정작 필요한 상품보다 덜 필요한 상품을 덜컥 사버리고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텔레비전의 홈쇼핑광고나 매달 우편으로 배달되는 광고책자에 적힌 가격을 보고 마음이 후끈 달궈져서 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모드로 변하게 되는 것도 아무런 소비 계획 없이 지출하는 평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두고 지름신이 강림하는 시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머리를 식힐 시간에 홈쇼핑광고를 보거나 인터넷의 경매 사이트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때 평소에 구입할 계획이 없는 고가의 상품을 충동에 휩싸여 구매하는 현상을 보고 귀신에 홀린 모습과 흡사하기에 무작정 내지른다하여 지름신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지름신이 강림한다는 것은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기에 과소비의 원인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힘들게 돈을 벌어들였기에 지갑을 열기가 만만찮은 성인에게도 충동적인 구매는 피하기 어려운 유혹인데 고된 노동의 경험이 부족한 자녀들에게 계획적인 소비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상품인가를 검토하고 나서 상품을 구입할 재정적인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해서 문제가 없다면 구매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구입목적과 구매능력을 확인했다고 해서 구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예전에 농구를 즐겨했다. 농구는 그다지 돈이 필요하지 않은 운동이다. 간편한 운동복에 농구공을 지참하고 근처 학교 농구장으로 어슬렁거리며 가면 된다. 그렇지만 중고등학생들의 차림을 살펴보면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유명메이커 농구화는 한 켤레에 20만원을 호가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고가의 농구화를 신고 갖가지 럭셔리한 농구복을 착용한다. 농구공도 일반 농구공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값비싼 공을 소유하고 있다. 농구를 열심히 한다면 일 년에 두 켤레의 농구화가 필요하다. 물론 대학동호회에 가입할 실력이라면 출중한 능력을 발휘할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 고기능성 농구화를 구입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냥 재미로 즐기는 일반 학생에 하다면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리 목적과 재정능력에 문제가 없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상품을 구입하려면 계획적인 소비습관이 몸에 배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충동구매로 인한 과소비가 고착된 습관이 되어 아무리 많이 벌더라도 평생 부족한 돈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계획적인 소비습관을 들게 하는 좋은 방법은 불로수입을 없애는 것이다. 정해진 용돈만으로 쓰게 한다면 고가의 상품을 쉽게 구입할 수가 없다. 물론 알바나 뜻하지 않은 수고의 대가로 얻어진 수입이라도 고단한 노동을 통해 얻은 돈이라면 충동적으로 구입하기는 힘들며 설령 값비싼 제품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가없이 부모로부터 타낸 돈으로 구입하게 한다면 계획적인 소비습관을 발붙이게 할 수가 없다. 물론 용돈을 적립해서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과소비의 결과로서 용돈 없이 불편한 삶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시행착오를 방지하는 산교육이 될 것이다. 젊은 시절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며 특히 잘못된 결정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실수나 실패 없이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실수를 통해 좋은 결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대가없이 돈을 지불해줌으로 그런 기회를 박탈한다면 나쁘고 어리석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소비는 영적인 행위임을 일깨우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누구에게나 소중한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축구광이라면 월드컵경기를 보려고 몇 년 전부터 적금을 들어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휴가를 아낌없이 쓸 것이다. 희귀한 애완동물을 좋아한다면 보기에도 끔찍한 타란튤라 거미와 징그러운 카멜레온 그리고 못생긴 고슴도치를 구입하는데 막대한 돈을 쓸 것이며 애기중지하며 기를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는 미식가라면 진귀한 맛을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가진 돈을 물 쓰듯 할 것이다. 명품에 사족을 못 쓰는 이라면 더 이상 말할게 없다. 신용카드를 긁고 월급을 몽땅 털어서라도 못 사면 앓아누울 게 분명하다. 이들은 고된 노동으로 얻은 소중한 돈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라면 마다한고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삶의 기쁨이 그곳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음이다.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섬기고 싶은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와 구제와 사용하고 싶어 할 게 뻔하다. 이렇듯 돈을 지출하는 사용목적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곧 알게 된다.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는 영적인 사람인지, 아님 세상과 세상의 것을 기뻐하고 즐기는 육적인 사람인지는 그 사람을 말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어느 곳에 돈을 소비하는 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십일조와 형식적인 헌금을 내면 나머지 돈은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고 믿는 크리스천들은 영적인 행위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행위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성품과 믿음이 없어서였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이전에 동기나 속내를 찬찬히 살펴보신다. 돈을 둘러싼 영적인 행위가 교회에 드리는 헌금이 전부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은 돈을 사용하는 깊은 속내나 마음의 동기마저 하나님을 보고 계신다.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더 큰 재물을 맡겨 주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교회에서의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일상의 삶에서 드러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돈의 사용이 곧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영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크리스천 사업가나 투자가가 드문 이유는 돈을 버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을 사용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나 투자를 위해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이들도 정작 많은 돈을 얻은 후에는 마치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 이상 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위해서는 헌신적인 사역자 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도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늘나라의 재정창고를 열어 엄청난 재물을 쏟아부어주시도록 하기위해서는 자녀의 작은 용돈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종이고 사역을 맡은 동역자이다. 자녀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맡은 사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서일 것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는 것이야말로 부모에게 맡겨진 귀한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