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전공이 전도아임미꺼." 부산 모자이크교회(구 영주동교회) 김두식 목사(42세)의 2007년 스케줄은 벌써 꽉 찼다. 주일 저녁부터 수요일까지 부산에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전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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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동교회 김두식 목사 ⓒ뉴스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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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교회가 전도를 안한다는 게 김두식 목사의 판단이다. 김 목사는 ‘어명 정신’을 강조했다. 전도는 어명(御命)이라는 것이다. “사극에서 왕이 ‘죽으라’고 명령하면 사약을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살리라’는 명령은 춤을 추면서 받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김 목사는 전도 명령을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전도에 있어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했다. “세상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어명을 어명으로 받는 교회와 어명을 어명으로 받지 않는 교회죠.” 김 목사는 최근 "전도는 어명이다"(생명의말씀사)는 책을 내기도 했다.
모자이크교회는 전도가 핵심이다. 교회 내 영화, 독서, 축구, 요리, 컴퓨터, 악기 등 다양한 소그룹도 전도를 위해서 존재한다. 소그룹뿐만 아니다. 재정, 행정, 사역, 조직 모두가 포커스는 전도라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사실 영주동교회는 허름한 교회였습니다. 고신교단의 특성을 가진 전혀 변화를 모르는 교회였죠. 어쩜 지난 5년간의 변화가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 1월 1일 가진 새 교회 건물 헌당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체질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전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모자이크교회는 학사관을 운영한다. 처음 남학생 4명, 여학생 10명을 학사관에 입주시켰다. 이들을 데리고 단기선교도 데리고 가고, 장학금까지 주었다. 지금은 이들의 동향 선후배들로 학사관은 수십명이 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교회 철학이 ‘사람 살리고, 사람 키우는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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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동교회 송구영신예배 ⓒ영주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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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외대 시절 토플 최고점수자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유명세탓에 고수익을 날리는 영어 과외를 하기도 했다. 7년 만에 mdiv.와 ph.d를 끝냈으니 남들보다 수년은 빠른 것이다.
로버트 콜만의 “주님의 전도 계획”을 읽고, 콜만이 교수로 있는 시카고의 트리니티신학교로 건너간 게 전도학을 배운 동기다. 그후 리폼드신학교에서 ph.d를 마치고 고신대 교수로 내정되었지만, 뿌리쳤다. 전도를 해야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고향 부산에 돌아와서 개척 2년 만에 2백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영남권에서 개척으로 이만큼 부흥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상식이다.
그리고 나자 고신 총회장 출신의 목사가 섬기고 있는 50년 역사의 모자이크교회에서 제 7대 담임목사로 김두식 목사를 청빙하게 된 것이다. 5년 전이다. 전도를 통해 매주 새신자들이 등록하고 있는 모자이크교회는 현재 청장년만 50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영주동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촌이었다. 약간 언덕배기인 이곳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리면서 천막촌을 형성하기도 했다. 지금도 영주동은 북한 출신들이 많이 살고 있다. 부산 대청동의 대성교회와 함께 피난민들이 세운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영주동교회(현재 모자이크교회)다.
김 목사는 매주 토요일 오후 교회 청년들을 이끌고 가까운 부산역 광장으로 나간다. “전도자의 본분,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죠.” 일종의 자기 개발인 셈이다.
영주동교회는 새해 들어 교회 명칭을 모자이크교회로 바꿨다. '모이고, 자랑하고, 이끌어주고, 크는 교회'란 뜻이다. 예배와 교육, 전도와 부흥 등 모자이크의 미래상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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