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부자되기

돈을 버는 하나님의 원칙(1) 준비성

gracegracr 2011. 11. 22. 11:07

교회에 오면 자주 듣게 되는 얘기중의 하나가 초현실적인 기대감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과 이적을 바라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말하고 있다. 이를 바라는 조건은 희생적인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다. 기도와 헌신을 투입하면 기도가 응답되며 가난한 재정이 풍성해지고 불치의 병이 낫는다고 말한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없을 것이며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소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항목들이다. 그러므로 소원하고 기도만하면 하나님이 무슨 일이든지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만이 가능하다.

이를 돈을 버는 주제로 다시 옮겨보자. 돈 버는 일은 참 힘 드는 일이다. 일용직이라면 하루 종일 뙤약볕아래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겨우 생계비를 웃도는 일당을 받게 된다. 그나마 일거리도 매일 주어지는 일이 아니다. 직장인들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오금을 못 피고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영업을 비롯한 사업가들을 어떠한가. 끝없는 불황에 투자한 돈의 회수는 고사하고 평생 일궈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릴 위기에 피가 마른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들도 파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요는 늘 제자리인데 공급은 매년 늘어나며 뼈를 깎는 경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 버는 일은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쉬운 일이 없다. 그런데 크리스천만이 하나님의 특혜로 고통스런 과정 없이 부유하게 살아간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하시는 원칙이 무색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일어난다 하더라도 지혜를 주시고 환경을 열어주셔서 가능하게 하시기에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채지 못한다.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땀 흘리는 노동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열매도 없다.

   눅 14: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망대는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보초가 장시간 추위와 땡볕을 피하기 위해 지은 자그마한 건물에 불과하다. 그런 조그만 건축물을 지으려 해도 소요되는 시간과 더불어 투입되는 각종 자재와 인건비 등을 비용으로 계산해서 미리 준비해두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준비 없이 시작했다가 중도에 비용이 부족해서 포기한다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에게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교회에 오면 이상한 원칙이 적용된다. 준비가 부족해거나 계획이 부실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논리이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공부가 최대의 관심사일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상급학교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중 몇몇은 아예 학교만 파하면 교회에 와서 사는 아이들도 있다. 각종 학생회 모임이나 찬양대 등의 봉사를 비롯한 과외활동과 그 준비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사형통해서 소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에는 열심이지만 공부에 등한시 하는 학생들의 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신앙행위에 열을 올리며 기도를 간절히 하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성적은 엉망일 것이며 소망하는 상급학교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행위와는 별도로 준비하는 노력에 따라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원칙을 세상과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소망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이와 같이 장래에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면 필요한 재정을 포함한 제반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실행하여야한다. 인생목표가 아무리 원대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더라도 본인이 준비하지 않는다면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하다. 자녀들에게 크고 높은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막연한 꿈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분명하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1. 원대한 꿈과 구체적인 계획을 가져라.

   시 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인생은 하얀 종이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대한 위인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크고 원대한 꿈을 불어넣어주었다는 것이다. 꿈이 없이 자라는 아이와 꿈을 꾸며 크는 아이는 생각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 된 우리가 이 같은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에게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쳐보라고 팔을 벌려주기보다 자신들이 느낀 현실의 벽을 오르기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자녀들에게 욕심껏 먹이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이러한 능력들이 장래의 자녀들의 삶에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부모 자신도 어렸을 때 꿈꾸었던 삶을 살고 있는 지 반문해보라. 물론 먹고 살기조차 버거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은 아니겠지만 꿈을 포기하고 사는 인생 역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몫은 아니다. 중년이 된 다음에 새로운 꿈을 꾸고 실행하는 것은 이미 해왔던 것들을 허물고 다시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으며 가족들의 동의를 얻는 것도 만만치 않다. 설령 굳센 결심을 갖고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잘 되지 않으면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인생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원대한 꿈과 힘찬 포부는 세상을 당차게 여는 힘이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억지로 부리시는 분이 아니다. 먼저 마음에 소원을 주어 스스로 열정을 갖고 일을 하도록 격려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꿈과 열정을 불어 넣는 일은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원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하자.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도 있을 테고 돈을 많이 버는 재벌 사업가가 되어 전 재산을 선교와 구제에 사용한 록펠러를 꿈꾸는 자녀도 있을 법하다. 그렇지만 성스러운 직업이나 신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는 성스럽고 장사꾼은 비천하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를 짓고 외국의 오지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일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직업과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제자로 사용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엘리트 종교의식을 가지고 남에게 보이려고 형식적인 신앙행위만 반복하여 예수님에게 심한 책망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도 외면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목회자나 선교사뿐만 아니라 무슨 직업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귀천이나 차별이 없다. 무슨 동기와 목적 그리고 내면의 자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유일한 잣대가 될 것이다.

야심찬 꿈과 목표가 있지만 이를 실행할만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다리 없이 지붕 위를 오르려는 것과 같다. 구체적인 계획은 원대한 꿈을 향해 차근차근 오르게 해주는 계단이 될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이 할 일조차 죄다 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치 자녀들은 부모들이 짠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로봇 같다. 직업과 결혼대상자와 장래의 목표에 따른 대학과 학과 역시 부모가 정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시계를 힘차게 돌린다. 영재교육으로 유명한 어린이집에 입학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와 태권도, 컴퓨터, 음악,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순시한다. 그러한 교육방식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지속된다. 그래서 자녀 스스로 생각하고 결심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없다. 시행착오나 실패에서 얻어지는 교훈조차도 없다.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되었더라도 원인과 대책을 알 길이 없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생각하고 가야 할 방향을 조언해주고 잘못된 길에 섰을 때 길을 잡아주는 역할만으로 족하다. 시시콜콜한 것같이 결정해주어서는 안 된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중년이 되어서까지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지 않는가. 자녀가 어려서 판단력이 부족할 때는 부모가 간섭해주되 자라가면서 스스로 계획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2.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라.

저축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저축하고 싶어도 저축할 돈이 없다고 한다. 수입은 빠듯한데 들어갈 구멍이 너무 많아 월급은 타는 즉시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늘 위태로운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저축을 미덕으로 알며 월급을 타면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 곧바로 저축한 돈으로 자식이며 동생들 학비를 대던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7,80년대의 부모세대보다 수입이 줄어들어서일까. 수입은 늘어났지만 씀씀이가 수입의 증가속도보다 큰 폭으로 앞질러 버렸기에 저축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부모들은 영화에서만 보던 자가용을 지금은 누구나 소유하게 되었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의 통신비가 추가 되었으며, 여유생활도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외식이라야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먹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생활수준이 월등하게 높아져서 격조 높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가다 보니 소비가 급증하게 된 이유이다. 게다가 대학시절부터 학자금 대출로 빚을 얻는 삶이 결혼을 하고 집을 사면서 빚이 큰 폭으로 늘어났고 사교육비로 이어지다 보니 평생을 빚을 갚으면서 살게 된다. 그래서 저축을 고사하고 빚더미에 앉은 인생이 되는 셈이다.

   잠 30:25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저축은 소비를 하고 남은 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수입에서 저축액을 빼놓고 남은 돈을 지출해야 가능하다. 누구나 수입은 적은데 쓰고 싶은 곳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즉 저축하는 능력은 수입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자족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있다. 즉 참고 견디는 능력이 있어야 저축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참고 견디며 절제하고 자족하는 성품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지니는 성품이 아닌 이유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욕망을 참고 견디며 절제하는 성품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을 두고 길러야 하는 것이다. 저축의 필요성은 저축하여 모은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축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내와 절제의 성품을 몸에 배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위해 돈을 사용하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소비하는 충성심을 기르기 위해 저축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이러한 성품을 습관으로 들이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저축의 습관을 몸에 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용돈을 타서 일부분을 저축하는 행동을 권장하며 금적적인 보상으로 격려하고, 그래도 저축하지 않는다면 금전적인 불이익을 주는 방법은 사용한다면 자연스레 저축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축하는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준비가 안 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곳간 창고를 열어 재물을 쏟아부어주시지 않는다. 아무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라도 필요한 재정을 저절로 모아주시지 않는다. 교회를 개척하는 많은 목사들이 생활비나 교회 유지비가 부족해서 교회 문을 닫는 일이 허다하다. 돈이 부족하다고 기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에 목회자의 하염없는 눈물에도 아랑곳없이 교회는 사라지고 만다. 교회나 가정이나 필요한 돈을 채우는 능력은 저축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저축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다 빚을 내어 욕망을 채우고 있다. 빚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기도 하지만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공격무기이다. 빚은 즐겨 사용하는 자는 서서히 자유를 잃게 되고 빚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빚을 내는 것은 쉽지만 저축하는 능력을 얻는 것은 어렵다. 하나님이 돈에 관해 세우신 원칙은 엄격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이고 흘린 땀에 비례해서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것은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과 같다. 가정에 오면 부모들이 TV드라마를 넋을 잃고 쳐다보기보다 책 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가족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분위기라면 자연스레 자녀도 책을 잡고 점차적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녀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부모들이 소비에 열을 올리기보다 먼저 저축하는 습관을 보여주며 통장에 돈이 쌓아지는 기쁨을 알게 해주어야한다. 통장에서 돈이 점점 쌓여지는 것을 보고 소망을 잃지 않게 되고 꿈이 가까워지는 즐거움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도 방탕에 빠져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보다 저축하는 성실한 사람에게 재산관리를 맡기듯이 하나님도 하늘곳간의 열쇠를 이런 사람에게 맡기시는 것은 당연하다. 저축하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3. 지식과 경험을 쌓으라.

돈 버는 분야는 사업과 투자만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 수입을 얻는다. 공무원이든지 공기업이든지 아님 중소기업에 다니든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거나 특별상여금을 받는다면 동료들에 비해 더 많은 연봉을 얻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의 탁월한 능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상사나 동료에게 잘 보이는 대인관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업무에 대해 잘 안다면 효율적으로 일을 하여 생산성을 올리게 될 것이고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될 것이다. 생산직이나 사무직에도 그렇지만 영업부서라면 판매한 금액으로 평가될 터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회사를 비롯한 많은 중견기업들은 오랜 시간동안 투자를 해야 하는 신입사원보다 당장 업무의 활용도가 높은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책을 내려놓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구축한 회사의 인맥에 기대거나 경영진에 대한 충성심으로 대신하려고한다. 물론 그러한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주어진 업무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겸비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탁월한 업무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상사나 경영진이 탐탁지 않게 여길 수는 있어도 내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쟁사에서 가장 바라고 있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회사를 중도에 퇴직하거나 해고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제 2의 인생을 시작해야하는 중년들이 선택하는 업종은 식당이나 부동산 소개소, 피자나 치킨집 등의 자영업이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 대부분은 투자원금을 잃을 뿐만 아니라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얻어 빚만 뎅그러니 남긴 채 접고 만다. 특히 그들의 전 직장이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 등의 경쟁이 치열한 사회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100%에 가깝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열정과 성실함만을 가지고 뛰어들었지만 자영업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영업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수십 년 동안 몸담았던 이들도 손해보고 업종을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 같은 업종이라도 가게의 위치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극심하게 갈라진다. 또한 소비자의 기호나 선호도는 수수로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공했던 브랜드라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특히 요즘처럼 끝없는 불황에 직격탄을 맞는 곳이 다름 아닌 자영업 분야이다. 수요자의 지갑은 꽁꽁 닫혀있지만 하루만 자고나면 우후죽순으로 새로운 점포가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 하고 있는 분야가 자영업이고 만나는 고객들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처해있는 암담한 사정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무리 사정이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성공을 하고 돈을 버는 이들은 꼭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의 베테랑들이다. 음식점이라면 음식 맛이나 서비스, 식당의 위치 등 모든 면이 혀를 내두를 만하다. 그들 역시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실력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출내기 자영업자들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빚더미에 앉아 다시 시작할 의욕을 상실한 것도 문제이지만 배우기를 거부하며 더 이상 경험을 쌓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년을 넘긴 사람들에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혹은 빚보증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필자의 친구들도 잘나가던 회사에서 나와 주식이나 펀드, 선물이나 옵션 등의 투자세계에 뛰어들었다가 재산이 거덜 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투자의 세계로 뛰어드는 계기는 거반 비슷하다. 투자의 열기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주변의 친구나 지인이 단숨에 투자액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귀가 번쩍 뜨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적금을 털고 보험을 해약하며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투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이들이 돈을 벌 리가 없다. 거품이 꺼지고 주식이 반 토막이 났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은 예외 없이 깡통을 찬다. 사실 투자의 세계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늘 교차된다. 투자의 귀재들은 내리막에 주식을 사서 오르막에 팔아버린다. 아주 단순한 전략이지만 보통사람들은 이를 따라하지 못한다. 탐욕과 조급함,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릴 줄 알며 절제와 오래 참음으로 성품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꿈도 꾸지 못한다. 주식 뿐 아니라 부동산 투자도 온갖 규제와 세금폭탄으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경매나 공매, 각종 펀드 등에 손을 대보기도 하지만 10여년의 경험은 기본이고 탁월한 안목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갖추기 전에는 어렵다. 그동안 원금을 다 날리고 빚더미에 앉기 십상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수입을 얻는 분야가 직장이든 아님 사업이나 투자분야이든 간에 전문가의 경지를 넘어서는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은 기본이다.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분양에 1만 시간을 쏟아부어야한다. 이는 하루 3시간씩 10년은 걸려야 한다. 전문가의 소리를 듣는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때서야 겨우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는 말이 나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생은 연습이 없다. 아무도 가르쳐 주기 않기에 한번 쓰러지면 다시일어나기 어렵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돈 버는 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중요성을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러주지 않는다면 자녀의 인생은 돛단배로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위태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특히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부모가 시행착오와 실패로 점철된 삶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교훈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