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성품을 가꾸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성품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을 복되게 하는 것은 좋은 성품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성품은 하나님의 복을 끌어옵니다. 하나님의 복을 머물게 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복을 감싸주는 것이 성품입니다. 성품에 문제가 생기면 복은 머물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품을 가꾸어야 합니다. 성품 가운데 온유한 성품은 예수님을 닮은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마 11:29)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은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됨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스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장차 주님과 함께 '왕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왕노릇'한다는 것은 곧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사람에게 왜 온유한 성품이 필요할까요? 온유한 성품은 누군가를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잘 다스리는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정복한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정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온유한 성품은 길들인 야생마의 상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야생마는 힘이 셉니다. 거칩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는 그 힘이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 힘을 좋은 일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야생마(野生馬)가 길들여 질 때 준마(駿馬)가 됩니다. 준마는 주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를 줄 아는 말입니다. 그가 가진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길들여 진 말입니다. 엘리사 모건은 온유란 단어의 뿌리를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참전 중이던 젊은 병사가 애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냅니다. 젊은 병사는 편지에 그가 전쟁을 마치고 귀향할 때 그녀에게 줄 선물로 백마를 가져가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가져갈 백마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 말은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동물보다 기품이 뛰어나고 멋지게 생긴 동물이오. 하지만 그 어떤 명령에도 순순히 따를 줄 아는 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의 주인은 그가 가진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마음껏 길들일 수 있소. 참으로 온유한 말이요."(엘리사 모건, 「내 마음의 열매가꾸기」 IVP. 119-120쪽)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통제가 어려운 야생마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우리는 준마처럼 길들여질 수 있습니다. 준마처럼 우리가 가진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성품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따뜻합니다. 부드럽습니다. 자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을 조절할 줄 압니다. 욕심을 다스릴 줄 압니다. 분노를 다스릴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을 존귀히 여깁니다. 예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친절합니다.
온유한 성품은 온유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우리 안에 심겨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온유한 성품의 씨앗을 잘 키우는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을 가꾸기 위해서는 온유한 성품을 사모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내야 합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치욕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몽골 초원에서 발원한 원나라가 중국 송나라를 멸망시킬 때 송나라의 충신 사방득은 "분을 참지 못해 나아가 죽기는 쉬우나 치욕을 참고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치욕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갚으셨습니다. 천사를 동원할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칼을 소유하셨지만 칼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유하신 능력을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선한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온유는 향기롭습니다. 온유한 성품은 복된 성품입니다. 온유한 성품으로 복을 누리고, 풍부한 화평을 즐기시길 빕니다(시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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