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는 하나님의원칙(2) 노동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에게 공부에 대한 필요를 알게 하는 방법중의하나가 생계를 위한 노동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대학이나 회사 시험에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게고 결국은 노동 강도가 세지만 보수는 형편없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어릴 적에야 공부가 하기 싫으면 게을리 할 수도 있고 대학에 간다고 해서 형통하게 산다는 법도 없다. 그렇지만 좋듯 싫든 돈을 벌어야 생존하는 삶의 현장에서 노동은 필수적이다.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피부로 느낀다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모든 동식물들이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만드셨을 뿐이지 그들의 노동까지 면제해주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에 핀 백합화나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해야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네 부모세대들은 자신들의 겪은 가난과 노동의 고통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나이 삼십이 넘은 자녀들조차 직업이 없이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서 쓰는 일이 흔하고 심지어는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는데도 늙은 부모에게서 생활비를 타야 생활이 가능한 가족도 있다고 한다. 이는 자식이 게으른 탓도 있지만 어린 자녀에게 노동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늘그막에도 자식을 보살펴야하는 멍에를 진 것이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하셨다.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사의 엄격한 신분차별이 있어 육체적인 일은 천대하며 배를 곯아도 성현들의 글만을 읽던 선비들이 가장 높은 단계의 신분이었고 나머지 생산적인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 뒤를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관료들이나 사무직 노동자들이 생산직 근로자나 일차산업의 종사자들에 비해 대우나 수입 등이 불공평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밝히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처음 장에서부터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일을 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을 관통해서 하나님은 잠도 주무시지 않고 당신이 창조한 세상과 사람들의 일에 관여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은 어떠신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오셨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선생의 문하생으로 성경과 지혜를 배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우리의 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예수님은 제대로 된 학교 문턱은 고사하고 어린 시절부터 고된 노동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야했다. 직업이 세습되었던 고대 중동지방의 문화로 보아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 장남인 예수님도 목수의 일을 하면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할인 가장의 책임을 짊어지셨다. 그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고된 노동에 비해 수입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공생애 3년의 기간에도 복음 선포를 위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면서 묵묵히 맡은 일을 마치신 걸로 보아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노동관이 뒷받침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열심히 일을 하신 습관이 몸에 밴 탓에 우리에게도 이러한 것을 명령하셨다.
헌신적인 신앙행위가 노동의 효력을 대신하지 않는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선교하면서도 스스로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통해 동료와 자신의 선교비용을 충당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목회자들은 교단에서 목회이외의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한 곳도 적지 않다. 물론 목회에 전념하도록 하기위해 좋은 의도로 마련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교회의 절반이상이 연간 재정수입이 2,000만원이 채 되지 않은 미자립 교회이다. 그래서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제외하면 목회자의 수입은 일반 가장의 용돈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 생계를 잇기에 충분한 사례비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눈물 속에 문을 닫는 교회도 부지기수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오로지 선교를 위해 인생을 걸고 교회를 개척하였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재정적인 독립을 이루는 게 믿음의 척도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는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재정적인 수입이 되지 않는다면 지혜롭게 다른 일을 통해서라도 수입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목회자 가정일지라도 빈궁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재정을 채워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이나 크리스천이나 동일하게 헌신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잇게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초대교회에는 전 재산을 바치는 이가 많아 재정이 적지 않았고 예배를 드리고 나서 식사를 하는 관행으로 모두들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곤 했다. 그래서 교회에는 집에도 가지 않고 밤낮으로 오직 기도나 예배 등의 신앙행위에 전념하는 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헌신적인 신앙행위를 함으로 교회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무리 헌신적인 신앙행위를 할지라도 수입을 얻기 위한 노동을 대신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먹지도 말라며 가혹하게 책망을 하고 있다.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위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 무엇으로도 수입을 얻는 노동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헌신적인 신앙행위는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당연한 일일지만 수입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부의 교인들은 맹목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재정적인 형통함을 기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원칙이다.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원칙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제정해 놓은 것이기에 우리는 피해갈수가 없다. 주변에는 태어날 때부터 백만장자의 상속자로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혹은 평생 농사를 지어 겨우 먹고 살았지만 개발 예정지로 선정되어 토지보상금을 받아 하루아침에 수십억을 가진 부자가 되어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들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게 행운일까 불행일까?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의 눈에는 엄청난 행운으로 비치겠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는 덮어놓고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노동이 필요 없는 삶은 또 다른 재앙이기 때문이다. 상속받은 재산으로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이들은 남들이 힘들게 돈을 버는 시간에 노는 일에 열중한다. 휴양지나 나이트클럽에서 환상적인 파티를 벌이지만 쾌락을 위한 탐욕은 끝이 없다. 그래서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이 유령처럼 따라다니고 결국은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는 악몽의 삶을 살게 된다. 생계비를 버는 목적을 그만두고라도 고된 노동으로 얻어지는 땀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에 쾌락을 쫒는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청년시절에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 다녔기에 토지보상금으로 갑자기 졸부가 된 이들의 사연을 개발이 되어도 동네를 떠나지 않고 슈퍼를 하고 있는 토박이로부터 들을 수 가 있었다. 부자는 되었지만 농사를 짓던 땅이 없어진 그들은 처음에는 매일처럼 모여 술을 마시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막걸리나 소주에서 맥주나 양주로 입맛이 변하고 동네슈퍼에서 번화가의 가요주점으로 발길을 옮겼다가 예쁜 애인(?)을 만나면서 가정이 깨지고 말았다. 재산을 노리는 새 애인은 남자를 유혹해서 이혼하자고 꼬드겨서 결국은 이혼소송과 재산싸움이 벌어지게 되어 집안이 콩가루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고 삶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평생 큰돈을 만져보지 못한 이들은 돈을 사용하고 관리할 줄을 몰라 고소득의 사업이나 투자를 앞세운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돈을 빼앗기게 될까봐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은 은행금고의 깊은 곳에 넣어둔 이들은 그대로 자식들에게 넘어가 방탕한 자식들의 인생을 망치는 도구로 변질이 되었다. 재산을 얻은 방법이 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정직한 땀으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었기에 돈을 제대로 관리할 줄을 몰라 돈이 인생을 물어뜯은 격이 되어 버린 셈이다. 노동은 생계비를 버는 방법이기이전에 건강한 삶을 사는 소금의 역할을 하기에 어떤 이유이든 노동이 없는 삶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노동은 하나님이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얻는 수단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땀의 소중함을 가르쳐라.
너무 철이 없어 망나니처럼 굴었던 자녀들이 군대에 다녀오면 철이 들어 공부도 열심히 하며 지극한 효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게다. 군에 가서 혹독한 환경에서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성숙한 인생관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교육시키는 곳이 가정과 학교만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몸을 던짐으로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있다. 그런 혹독한 과정이 없이 자란 자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더라도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 이혼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늙은 부모에게 짐만 안겨주는 일도 허다하다.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삶의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며 그 한가운데 노동이 존재한다.
자녀에게 노동의 귀중함을 가르쳐 주려해도 공부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게 너무 안쓰러워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게다가 잠도 제대로 못자고 공부하는 자녀에게 다른 것에 정신을 팔리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공부에 전념케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바람직한 직업을 얻어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닌가? 예전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직업이 보장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먹구 대학’이란 말이 나온 것일 게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게으르게 다니더라도 학교졸업장만으로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학고 대학졸업생의 5%만이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등 소망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시대이다. 나머지 95%의 졸업생들은 중소기업에 들어가든가 아님 자영업이나 알바 그도 저도 못하면 그냥 백수로 지내야 할 판이다. 당신의 자녀들이 5%내에 충분히 들어갈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남들과는 다른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말하는 신입사원들의 입사조건은 탁월한 학업성적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성품이나 사회성이나 대인관계 그리고 건강한 노동관이 있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설사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 나온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이보다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가혹한 노동에서 배우는 절제와 인내의 성품과 더불어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우려면 젊은 시절부터 땀이 주는 인생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대학 4년 동안 줄곧 알바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는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과외도 하였지만, 그 당시 정부의 과외금지조처로 나머지 3년은 우유배달을 하며 학교를 마쳤다. 필자가 우유배달을 하던 시기는 80년대 초반으로 지금처럼 종이팩에 포장하기보다는 우윳병을 주로 사용하였기에 무척이나 무거웠으며 오토바이나 차로 배달하기보다 짐자전거에 싣고 새벽에 배달을 하였기에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는 고된 노동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인생이 만만지 않다는 교훈을 일찍 깨달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시절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졸업하고 나서 장교로 임관된 군복무시절부터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해 나간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필자가 알바를 하느라 공부를 게을리 한 핑계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노동은 평생 중요한 교훈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업에 실패하고 힘든 시절을 겪을 때에도 막노동이나 길거리에서 계란빵을 구워 파는 등의 허드렛일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그다지 개의치 않고 해내면서 고통스런 시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청소년시절부터 몸에 밴 억척스런 노동관은 어려운 시절을 지탱해준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자녀들에게 노동의 귀중함을 깨닫게 할까?
공부하는 것조차 힘들게 여기고 기피하는 자녀들에게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노동의 귀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면 인생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자녀가 이를 깨닫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모의 노동에 참여함으로 자연스레 경험하는 일이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직업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 만약 부모가 농사나 제조업에 종사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 농번기나 일이 밀려있을 때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직업을 몸소 체험함으로 고된 노동의 고통을 체험한다면 공부하라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조차 없다. 마약부모가 자영업을 한다 해도 자녀들의 노동을 동참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식당이나 피자, 혹은 치킨집 등은 서빙이나 청소, 설거지, 배달 등의 허드렛일이 필수적이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공부할 시간에 자녀에게 자신의 일을 시키는 일에 죄책감을 갖는다. 물론 많은 시간을 빼앗는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주말의 피크타임이나 바쁜 시간대에 잠깐씩 도와주는 것이라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공부는 집중력과의 싸움이지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허구한 날 책상에 앉아 공상이나 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의 노동에 참여함으로 육체노동의 고통을 경험으로 깨닫는 자녀들은 집중력을 갖고 공부에 임하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배우는 것만은 아니다. 자녀가 부모의 직업을 통해 일을 배우는 산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받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는 대기업의 사무직이나 공무원, 교사들의 화이트칼라가 인기 있는 직업이었지만 자녀가 성인이 되는 2,30년 뒤에는 사정이 다르다. 기계와 컴퓨터의 발달로 사람이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은 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숙련된 노동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결합된 직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음식점을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쉽게 요리를 할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는 언제나 드물다. 그래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주방장은 언제나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오랜 시간동안 경험과 노력의 산물이다. 만약 부모의 음식점을 통해 눈으로 배우게 된다면 돈으로 주고라고 배워야할 것이다. 자녀가 요리에 관심과 재능이 있다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한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회사원보다 맛있는 식당의 주방장 겸 주인이라면 평생 돈 걱정 안하고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풍부한 지식과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된 전문기술력과 창의력이 밑바탕이 되어 전문가의 반열을 넘어 장인의 수준에 오른다면 직종이 무엇이든 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 시작은 부모의 직업에서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경험함으로 시작되었다면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될 것인가?
부모의 직업이 자녀들의 경험을 쌓게 하기 어려운 직업이라면 힘들게 찾아서라도 자녀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어야한다. 자녀가 탁월한 학습능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학교의 졸업장과 성적만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이나 직업을 얻기 힘들다면 더욱 그런 기회를 찾아 경험을 쌓게 해주어야한다. 중고등학생이라면 방학을 이용해서라도 헤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나 편의점 등의 소점포에서 알바를 시키는 것도 좋다. 부모의 지인이 경영하는 업소라면 믿고 맡기기에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벌어들인 돈을 스스로 사용하게끔 맡긴다면 더욱 알차게 관리하는 능력을 배우게 되니 일거양득이 될 것이다. 자녀가 대학생이라면 비싼 학비를 들여 유학을 시키지 않고서라도 일하면서 외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단체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지금은 그리 많지 않지만 앞으로는 해외 인턴쉽 과정이 풍부하게 열릴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막노동이나 알바를 통해 여행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서 외국에 배낭여행을 다녀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생하면서 배우는 산교육은 풍성한 인생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직업을 통해 배우는 노동의 경험은 장래 직업의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주는 좋은 예방주사이다. 필자의 청소년기를 통한 노동의 경험은 인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할 때도 성실과 인내의 토양을 마련해주지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빚에 허덕이며 실의에 젖어 살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번듯한 직장을 다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자금이 없어 새로운 사업을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었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막노동과 다름없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마음을 추스렸고 길거리에서 계란빵을 구워 팔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물론 힘든 시절을 오래 겪었지만 다시 자영업을 통해 재정적인 안정을 되찾고 목회와 사역의 길을 걷게 된 힘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필자가 방안에 누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에 절어 살았다면 새로운 인생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청소년기에 겪었던 노동의 경험은 역경의 삶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과 더불어 절제와 자족의 밑바탕을 만들어주었으니 현장의 삶에서 이보다 더 좋은 선생을 만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