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준석 목사 “화목한 교회를 세우는 영적 지혜”
라준석 목사 “화목한 교회를 세우는 영적 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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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13~18절
온유함의 밑바닥에는 ‘당신(YOU)’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나와 너’로 상정하고 일이 아닌
인격적인 관계로 말을 경청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늘에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야고보서에 나오는 지혜의 특징 두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실천적 지혜입니다. 실천적 지혜란 객관적 지식이나 정보, 인식론적 능력이 아닌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혜 지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지능 지수만 높고 지혜 지수가 낮다면 누군가와 항상 부딪힙니다. 그러나 지혜지수가 높으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어가고 평화를 이루게 됩니다.
두 번째 특징은 후천적 지혜입니다. 후천적 지혜는 타고 난 것이 아닌 살아가면서 후에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천성이 아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영혼의 창을 열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가 넘칠 줄로 믿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한 행실을 통해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기의 행위를 보이십시오.”(13절)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은 곧 겸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꺾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함은 순종입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의 온유함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나운서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명씩 경쟁하는 프로였습니다. 한 명은 여성, 한 명은 남성이었는데 문제가 일상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물건을 표현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경쟁자 두 명이 동일한 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성은 컵을 가지고 심사위원들 마음에 들게 잘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에 남성은 여성보다는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이 여성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당신보다 앞에 발표했던 사람이 어떤 내용을 발표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전까지 자신만만하던 여성 경쟁자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버벅 거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덧붙였습니다. “아나운서는 말하는 직종의 사람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었던 사람이 이겼습니다.
그 프로를 보며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도 남을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내 생각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사람에게도 그런데 하나님께도 그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온유함으로 그 행실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늘의 지혜요 온유함이요 겸손함입니다.
온유함의 밑바닥에는 ‘당신(YOU)’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나와 너’로 상정하고 일이 아닌 인격적인 관계로 말을 경청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거짓지혜도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거짓 지혜, 세상 지혜를 멀리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에 지독한 시기심과 야심이 있다면 자랑하거나 진리를 대적해 거짓말하지 마십시오.”(14절)
진정한 지혜에 반대되는 거짓지혜, 세상지혜의 특징은 시기심과 야심입니다. 이것은 자랑하거나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시기심과 야심은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또한 야심은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비전이지만 내가 세운 것은 야망입니다. 시기심과 야망 속으로 들어가면 ‘자신(I)’이 있습니다. 온유함의 밑바닥에 당신(YOU)이 있다면 야망의 밑바닥에는 내(I)가 있습니다.
사탄은 항상 자기를 건드립니다. “다른 사람이 너를 무시했어. 너의 꼴이 뭐냐” 그러나 성령님은 항상 상대방을 보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눈을 들어 내 앞에 서있는 인격을 보게 합니다.
시기심과 야심 밑에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경쟁심입니다. 경쟁심은 아주 무섭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자면 온유함은 하늘 지혜요, 시기심과 야심은 세상 지혜입니다.
이 두 가지 관계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겸손함이란 다른 사람을 나보다 좋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항상 나보다 다른 사람을 무시할 점을 찾게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나보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온유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습니까. 내가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시기심과 야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꼭 짐승이 된 느낌을 받습니다. 온유한 사람을 만나면 존재감을 느끼게 되고, 사랑받는 느낌, 존중받는 느낌,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이런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좋아한 이유는 다른 것도 아닌 온유함이었습니다.
“모세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땅 위에서 그보다 겸손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민 12:3)
모세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형 아론 앞에서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진정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결국 대접받는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닌 온유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 후면 악인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들은 땅을 유산으로 얻을 것이고 큰 평화를 누리며 기뻐할 것입니다.”(시 37:10~11)
땅은 획득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마음은 획득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시기심과 야심으로 살지 마시고 온유함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늘 지혜를 사모하십시오
세상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하늘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 결과, 열매가 다릅니다.
“이 지혜는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입니다. 시기심과 야심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15~16절)
세상 지혜를 가지고 나아가면 혼란, 분열, 분쟁, 깨어짐이 생깁니다. 이는 반드시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아무리 도덕적인 법을 잘 세워도 세상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 그 법과 규범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불안전해도 하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무엇보다도 성결하고 또한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즉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17절)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 없음, 위선 없음 등 성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 열매는 ‘평화’입니다.
“의의 열매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이 화평의 씨를 뿌려 거두는 것입니다.”(18절)
하늘의 지혜를 받으면 화평에 씨를 뿌리고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온전한 은사는 위로부터 오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분에게는 변함도,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약 1:17)
좋은 선물을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약 1:5)
후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여러분, 하늘 지혜를 사모하십시오. 이는 후천적으로 주어집니다. 오늘 무릎 꿇고 기도하면 하늘 지혜를 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선물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이 순간, 하늘 지혜를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