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gracr 2010. 3. 21. 06:37

공관복음서

제1장 복음서와 사도행적

 

1.복음의 의미

복음(τὸ εύαϒϒέλιον )은 희랍어에서 좋은 소식을 전한데 대한 상, 또는 좋은 소식 자체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신적인 패왕의 출현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므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으로 씌어졌다.

신약에서 이 말은 구원의 소식이라는 특수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포 또는 그를 통해서 오고 있는 구원을 선포하는 설교를 복음이라고 했다.

2세기 초에 와서 처음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위, 그의 고난과 부활을 기록한 책들을 복음이라고 불렀다.

 

2.복음서의 배열과 공관서

고대 교회에 있어서 복음서들의 서열은 일정하지 않았다.

오늘의 서열은 무라토리 경전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연대순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이 서열은 이레니우스와 오리게네스 등에 의해서 전달되는데 대체로 희랍과 시리아 사본이다. 이에 반해 D.W 또는 고대 라틴어 사본에는 마태, 요한, 누가, 마가의 서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도들의 이름을 앞세운 서열일 것이다.

첫 세복음서를 공관서라고 하는데 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공관복음으로 불리워지는가?

이 이름은 그리스바하가 1776년에 세 복음서의 병행 구절들을 나란히 대조시키고 쉬노피스(σύνοφις = 공관)라고 명명한데서 시작된다.

사실상 이 세 복음을 비교하면 그 안에 아주 똑 같은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여 동일한 순서로 동일한 내용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일치된 자료와 또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음으로 셋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함께 본다고(seeing together) 하여 공관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복음서들은 예수를 회상시키기 위해 씌여진 것도 아니며 그의 기적 행위를 찬양하려는 목적도 없다. 주된 관심사는 신앙을 일으키고 그것을 강화하려는 것인데 그 서술의 목적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처음 교회의 신앙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 .

둘째, 선교의 목적으로 설교, 가르침, 그리고 적대자와의 논쟁을 위한 확고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다.

제2장 공관 복음서의 여러 문제

 

1. 문제

세 복음서를 비교하면 공통적인 것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①공통점

첫째, 공통점은 자료의 내용과 순서가 거의 비슷하다.

세례 요한의 출현과 수세, 유혹,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입성, 체포, 처형, 그리고 부활

둘째, 네용 상으로 공통된 것들이 있다.

세 논쟁(죄의 용서, 죄인들과의 교제, 단식에 대해서), 안식일 논쟁, 비유들.

셋째, 언어와 표현양식이 비슷하다.

예수의 권능에 대해서, 문둥병자의 치료, 종말적인 말씀.

세 복음서 중 두 복음서에만 공통된 것들이 있다.

③차이점

첫째, 마태와 누가는 같은 문제를 취급하나 다른 것들이 있다.

탄생과 어린시절의 기록이 다르다. 마태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로, 누가는 마리아의 계보로 서술하는데 그 족보는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에는 베들레헴, 누가에는 나사렛이 본향으로 되어있다. 또 마태에는 이집트 피난 얘기 , 동방의 현인들의 방문 등은 누가에는 없다. 또 부활기사도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는 갈릴리의 부활 현시를 주로 전하는데 누가는 예루살렘 현시만 전한다.

둘째 둘은 같은 자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배열이 다르고 다른 관련 속에서 보도한다.

셋째, 둘은 각기 특수 자료를 가지고 있다.

2. 그 해답의 약사

1)원복음설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아람어로 된 복음서가 있으리라는 전제에서 오늘의 복음서들은 각 복음서 저자들이 독자적으로 이 원 복음서에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 복음서 기자들의 독자적인 번역이 어떻게 문자 그대로의 일치를 나타낼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가설은 성립될 수 없다.

2)단편가설

파울루스는 마태와 누가의 성립은 예수의 그날 그날의 활동에 대한 비망록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가설도 공관서의 공통된 윤곽과 문자의 일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3)전승가설

헤르델에 의해 언급된 것을 기젤러가 발전시킨 것으로서 아람어의 구전으로 형성된 복음이 이미 있었으며 그것이 여러 형식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공관서의 평행성과 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4)이용가설

어떤 원복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 서로 이용한 것이라는 견해

3.두 자료론

1)원마가설

마태와 누가는 오늘의 마가보다 짧은 복음을 이용한 것이라는 추측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두 복음서에 공동으로 빠진 것에 대한 설명은 될지 몰라도 두 복음 중에 하나에만 이용된 것들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2)큐자료

마태와 누가를 보면 마가 외의 공통자료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것은 문장 자체도 일치된다. 이러한 사실은 두 복음이 마가 외에 또 하나의 자료를 공동으로 이용했음을 밝혀둔다.

그 자료는 대체로 어록이기 때문에 어록 자료라고 한다(그것을 약해서 Q라고 한다.)

 

 

요한복음 과 공관복음의 차이점

 

요한복음에도 공관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교훈적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지만 그 자료의 문체와 표현에 있어서 공관복음서와는 차이가 있다.

 

첫째는 주 사역지에 대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세 복음서에는 예수가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마지막 일주일을 예루살렘에 체류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에 반하여 요한은 최소한 세 번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이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예수에 대해서 서술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공관복음은 주로 예수의 갈릴리 활동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고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의 수난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 점에서 매우 다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공생애 활동의 주요 무대가 북부 갈릴리 지역이 아니라 남부 유대지방이나 예루살렘이다.

둘째로 공생애 기간 중의 유월절 방문기록에 대한 차이이다.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공생애에서 두 번 유월절이 반영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세 번 언급되고 있다(2:13, 6:4, 11:55). 여기에 더하여 요한의 기사에 의하면, 예수는 5장 1절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아니한 어떤 절기동안, 그리고 7장 2, 10절에 나오는 장막절 동안, 그리고 10장 22절에 나오는 수전절 동안에 예루살렘에 있었다. 사실상 요한의 기사에 따르면 예수는 10장 22절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다시 떠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적으로 말하자면, 수전절은 겨울철이다. 사실상 이 절기는 12월이고 유월절은 4원 중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의 이야기 안에서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은 며칠동안 체류한 것이 아니라 몇 개월 동안 체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세번째로 사상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문체뿐만이 아니라 그 신학적 내용이나 개념들까지 공관서와는 많이 다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공관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본다면 오히려 요한은 영생과 생명에 그 주제가 있으며, 공관서는 미래적인 종말을 강조한데 반하여 요한은 현재적인 종말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관서는 율법논쟁이나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반하여 요한은 상대적으로 율법논쟁, 윤리적인 삶의 교훈이 약하며 교회와 회당에 대한 확고하게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공관서에서는 이원론적인 개념을 찿아볼 수 없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어두움'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 등 이원론적인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네번째로 세 복음서가 예수의 사진이라고 한다면 요한복음은 예수의 초상화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세 복음서가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이라 한다면, 요한복음은 신문의 사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일간신문처럼 다루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시사 주간지처럼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간신문은 그날그날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다루어 기사화 하지만 시사 주간지는 그 신문 기사 중에서 관심이 있는 것을 뽑아 심층 취재하여 다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복음서와 요한복음의 차이는 서문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요한은 이야기식으로 쓰여진 공관서 자료에서 수난에 관한 자료만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것만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비록 많은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자료상으로 공통적인 것들은 제자의 부름, 왕의 신하와 아들 치료, 베드로의 고백, 예루살렘 입성, 최후 만찬과 수난사의 일부이고 그 외에 성전 숙청과 베다니에서의 기름부음이라는 아주 단편적인 보도도 있기는 하지만, 공관서와는 아주 다른 연관성을 지닌다.

 

다섯째, 공관복음에는 전혀 없는 기적 기사들이 있다.

가나의 혼인 잔치, 베데스다 연못에서의 병자 치유, 날 때부터의 소경 치유, 나사로를 살린 일, 그리고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오로지 요한복음에만 나타난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는 독특한 비유가 둘이나 있는데, 목자의 비유와 포도나무의 비유이다.

여섯째, 복음서 시작에서도 차이가 있다.

각 복음서의 시작을 보면,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족보이야기..... 마가복음서는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에서 출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배경부터 적어가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계셨던 예수님에서 부터 출발하면서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로고스라는 말은 헬라어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Word)과 이성(Reason)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중요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공관복음과 구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