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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의 12제자

gracegracr 2009. 9. 26. 12:11

 

 

6월 29일

 

베드로(Peter)

(어부시몬)

 

11월 30일

 

안드레아(Andrew)

(베드로의 동생)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어부 요한의 아들인 시몬 베드로(Simon Petrus, 6월 29일)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Andreas)는 공관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 출신이고(마르 1,21-310, 요한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 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다(요한 1,35-42).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Scythia)와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아카이아(Achaia)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7월 25일

 

야고보(James) 

(제배대오의 아들)

 

12월 27일

 

요한(John) 12월 27일

(야고보의 동생, 복음사가)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요한(Joannes)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동생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겐네사렛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삯군들과 배를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이들 형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또 흥분을 잘 하였기 때문에(마르 10,35-41), 예수님은 그들을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마르 3,17).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진리를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Patmos) 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묵시 1,9), 에페수스(Ephesus)에서 여생을 지내다가 그곳에서 수를 다하고 선종하였다.               

 

 5월 3일

 

필립보(Philip)

(세례자 요한의 제자)

 8월 24일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나타나엘과 동일인물로 추정)

  갈릴래아의 베싸이다(Bethsaida) 출신인 사도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아마도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의 제자인 듯하며, 사도들 명단에도 기록되어 있다(마태 10,3; 마르 3,18; 루가 6,14; 사도 1,13). 그 외에 그가 언급된 곳은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로 간택되었으며 나타나엘(Nathanael)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요한 1,43-48).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중에도 그가 참석했고(요한 6,1-15), 예수님의 수난 직전에 그는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도 하였다(요한 14,8-9).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하였다고 하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서 십자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사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불림 받았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필립보의 인도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요한 1,47)는 평을 들은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인도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설교하였고, 그곳에서 아스티야제스 왕에 의하여 참수를 당해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카스피 해안의 아바나폴리스,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르톨로메우스의 복음서는 위경이고, 프세우도-젤리시오에 의하여 단죄되었다. 그의 문장은 칼과 벗긴 살가죽이다.                                                 

 

 

7월 3일

토마스(Thomas)   

(고대이란, 인도에서 활동)

 

9월 21일

 

마태오(Matthew)

(세리, 복음사가)

사도 성 토마스는 아마도 갈릴래아 출신인 듯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성 토마스는 12사도 중의 한 명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토마스는 나중에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에서 설교하였고, 또 다른 옛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순교하여 마드라스(Madras) 교외 밀라포르(Mylapore)에 묻혔다고 한다. 성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성인이고, 1972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인도의 사도로 선언되었다.             

 성 마태오(Matthaeus)는 원래 가파르나움에서 로마(Rome)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으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갈릴래아 태생인 듯 보이며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60-90년 사이에 기술된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이며, 아람어로 기록하고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복음서는 70년 이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기록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유대아를 순회하며 전교하다가 동방으로 갔으며,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는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이다.     

 

 

5월 3일

           야고보(James)          

(알패오의 아들)

 

10월 28일

 

유다 타데오(Jude Thaddaeus)

(알패오의 아들)

 알패오(Alphaeus)의 아들 성 야고보(Jacobus)는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12사도로 기록되어 있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가끔씩 등장한다.

그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편지를 띄웠으면 합니다.”(사도 15,13-21) 하고 비유대계 그리스도인에게 4가지 관행만을 실천하도록 요구하였다.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설교가 군중을 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신전 지붕에서 내던져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맞아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루가 복음 6장 16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의 12사도 명단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다(Judas)이고,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타데오라 부르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옷 사람 유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다의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Jacobus)의 동생이라 하고, 마태오 복음 13장 55절과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는 주님의 형제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유다가 12제자의 유다이지만 유다의 편지의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성 유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설교하였고,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는 페르시아에서 이들 두 사도가 설교하다가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0월 28일

 

시몬(Simon)

(열혈당원)

 유다

    (유일하게 성인이 아님)    

 루가 복음 6장 15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에 등장하는 유대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혁명당원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성 시몬은 가나안 사람으로서(마태 10,4; 마르 3,18)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서방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설교하였고, 성 유다 타데오(Judas Thaddaeus)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페르시아(Persia)로 갔다가 그곳에서 함께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어떻게 순교하였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해 오는 여러 가지 전승 중에는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도 있고, 톱으로 몸의 절반이 잘려 순교하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시몬을 표현할 때는 큰 톱이나 십자가와 함께 묘사를 한다. 동방 교회 카에사리아(Caesarea)의 바실리우스(Basilius)에 따르면 성 시몬은 에데사(Edessa)에서 평화로이 운명하였다고 한다.                                           
가리옷사람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성인으로 추대되지 않은 사람으로 그 이유는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것이다.  유다는 일찌기 예수님의 제자로 있으면서 그 무리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모임의 총무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정을 담당하면서 자금관리를 하였는데 아마도 그로인해 그가 돈 맛을 알았을 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그가 양 한마리값도 안되는 적은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을 보면 그가 꼭 돈이 탐나서 밀고를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는 열혈 당원이었고 주님께서 붙잡히면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로마인들에게 맞서 당신을 구하라고 명령할 줄 알았고 그리하면 혁명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될 줄 알았다.   주님께서 붙잡히고 고문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의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무척 슬퍼하다가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Catherine
글쓴이 : 카타리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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