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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절 찬송가 해설

gracegracr 2012. 4. 5. 07:34

주님의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불쌍한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죄를 모두 지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하늘아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새찬송가 전집 2집 V.. - 주님께 영광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160장 무덤에 머물러

(R. Lowry 작사 ·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0장

 

《찬셩시, 1902》97장에 처음 채택된 이 찬송은,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 1826~1899)가 1874년에 작사 · 작곡하여, 친구 하워드 돈과 공동 편집하여, 자기가 편집책임자로 있는 비글로우 출판사(New York: Biglow & Main)에서 1875년에 출판한「가장 밝고 좋은 것」'Brightest and Best, 1875' 113쪽에 처음 실렸다.

 

작곡자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 1826~1899) 목사는 루이스버그대학 (후에 버크넬대학) 을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졸업과 함께 모교의 문학교수가 되었고 후에 모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45년에 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웨스트체스터(West Chester)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여러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뉴저지 플레인필드에 있는 파크아베뉴침례교회에서 목회를 마쳤다. 그가 목회할 당시는 남북전쟁 직후여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 로우리 목사는 신앙적이고 희망적인 찬송을 작사 · 작곡하여 캠프집회를 통해 보급함으로써 많은 갈급한 심령들에게 새 희망을 주었다. 그는 비글로우메인 출판사의 음악 편집자로서 일하면서 'Happy Voices, 1865' 를 시작으로 20권이나 되는 찬송책들을 출판하였고, 500여 곡의 어린이 찬송과 복음찬송들을 작곡.혹은 작사하여 자기가 편집한 출판물에 넣었다. 40세 이후부터 찬송가를 작사 · 작곡하기 시작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작곡자 로우리

 

“나는 찬송가 작가로 기억되기보다는 설교자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그를「나의 갈길 다 가도록」의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다. 맥커천(Robert Guy McCutchan, 1877~1958) 목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그의 설교는 불과 몇 천 명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가 작사 · 작곡한 찬송은 지구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으며, 이 일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로우리는 전문 음악인이 아니었지만, 한 번 불이 붙은 찬송가 작사 · 작곡의 정열은, 요원의 불길 같이 활활 타올라 수많은 찬송이 탄생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868년에는 브래드버리의 후임으로 주일학교 노래 편집인이 되었으며, 돈(Doane)과 함께 주일학교 어린이 찬송가를 편집 발행하였다. 그는《행복의 소리》'Happy Voices, 1865' 등 17 권의 찬송가책을 펴냈는데, 그 중에는 100만 부 이상이 팔린 책도 있다. 여러 해 동안 주일학교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대학 교수로도 있었고, 침례교 총회장도 역임하였다. 그의 찬송가로서 우리 찬송가에 실려 있는 것은 다음 11 편이다.

 

①무덤에 머물러 (160장)

②성자의 귀한 몸 (216장)

③주 사랑하는 자 (249장)

④나의 죄를 씻기는 (252장)

⑤여러 해 동안 주 떠나 (278장)

⑥날 위하여 십자가의 (303장)

⑦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359장)

⑧나의 갈길 다 가도록 (384장)

⑨주 음성 외에는 (446장)

⑩울어도 못하네 (544장)

⑪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545장)

 

이 찬송이 실린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성가와 독창곡 750곡집》'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 750 Pieces, 1889' 317장에 실린 후 생키의《복음 찬송가(1~6권 합본)》'Gospel Hymns No.1 to 6 Complete, 1894' 323장에 다시 실렸다.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P. P. Bliss 작사 ·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9장

 

《찬미가, 1905》44장에 처음으로 채택되었지만 지금 가사는《찬숑가, 1908》84장에 수정 채택된 가사다. 이 찬송은,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가 작사 · 작곡하여 생키(Ira D. Sankey)와 공동 편찬하여 발행한《복음 찬송가(제2권)'Gospel Hymns No.2, 1876' 제50장에 G장조로 처음 발표한 것이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성가와 독창곡 750곡집》'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 750 Pieces, 1889' 173장에 처음 실렸다.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는 미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11 살이 되었을 때 집을 떠나 농장과 제재소에서 일을 했는데, 12 살에 예수를 영접하여 침례교회에서 신앙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음악을 공부하였다. 21살인 1859년에 결혼하여 한 해 동안 처가의 농장 일을 거들었으나, 그 이듬해 음악교사로서 일을 시작하였다. 1864년 26세가 된 그는 시카고의 음악잡지「루트 앤 캐디」(Root & Cady)에 자기 작곡을 보내주었고, 무디 목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음악 전도사가 되었다. 그가 편찬한 찬송가 목록을 연도별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작곡자 블리스

 

1. The Prize, 1870

2. The Charm, for Sunday School, 1871

3. Sunshine for Sunday School, 1871

4. The Song Tree, 1872

5. The Joy, 1873

6. Gospel Songs(I), 1874

7. Gospel Songs(II), 1875

8. Gospel Songs(III), 1876

 

1876년 그가 별세한 후 그의 동료들이《복음 성가집》'Gospel Songs' 를 계속 내었다.

9. Gospel Songs, 1877

10. Gospel Songs, 1878

11. Gospel Songs, 1881

 

그는 정확히 매해 한 권씩 찬송가책을 펴냈으니, 그의 찬송가 사랑의 정렬이 정말 대단하다 하겠다. 이 여러 권의 찬송가 중에서, 우리 찬송가에 실려 있는 찬송은 다음 10편이다.

 

①할렐루야 우리 예수 (161장)

②달고 오묘한 그 말씀 (200)

③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202)

④주의 말씀 듣고서 (204)

⑤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267)

⑥속죄하신 구세주를 (298)

⑦내 너를 위하여 (311)

⑧내 평생에 가는 길 (413)

⑨하나님의 진리 등대 (510)

⑩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520장).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A. H. Ackley 작사 ·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1장

 

이 찬송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생명의말씀사에서 발행한《청년 찬송가, 1959》133장이 처음인데, 통일할 때《새찬송가, 1962》170장의 가사를 수정 채택한 것이다.

이 찬송가에는 일화가 있다. 작사· 작곡자인 앨프레드 애클리(Alfred H. Ackley, 1887~1960) 목사는 자기 교구 내에 있는 유대인 청년을 찾아가서 예수를 믿으라, 전도를 하였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날더러 왜 죽은 유대인을 믿으라 하십니까?” 애클리 목사는

 

“그는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고 전도한 후 돌아와서, 이 찬송「나는 살아 계신 구주를 위해 일한다」'I Serve a Risen Saviour' 를 작사 · 작곡하였다는 것이다.

 

작사 · 작곡자 앨프레드 애클리(Alfred H. Ackley, 1887~1960) 목사는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찬송가 작가 벤틀리 애클리(Bentley Ackley, 1872~1958)는 그의 형이다. 애클리는 뉴욕에서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런던으로 유학 가서 황실음악학교에 유학을 하여 유명한 첼리스트가 되었다. 돌아와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여 1914년에 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여러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한동안 부흥사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와 함께 일하였고, 피츠버그의 섀디사이드(Shadyside) 장로교회의 협동목사로도 일하였다. 그는 1,500곡을 작곡하였다. 동요와 민요 대학합창 등도 작곡하였지만 찬송가를 가장 많이 작곡하여, 로드히버 출판사(Roadeheaver Pub. Co.)에 편집자로 있으면서 모두 직접 출판하였다. 존브라운대학에서 그에게 성음악(聖音樂)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곡명「애클리」'ACKLEY'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인데, 1956년에 발행된 미국 침례교 찬송가 'Baptist Hymnal' 편집 때 정한 것이다.

작곡자 애클리

 

앨 스미스(Al Smith)가 편찬하고 무디출판사(Moody Press)에서 발행한《위대한 복음성가》'Great Songs of the Gospel, 1945' 55장과, 월터 에도우스(Walter D. Eddowes) 박사가 편집하여 로드히버~홀맥출판사에서 발행한《위노나호수》'Winina Lake, 1954' 28장에 실려 있다. 판권은 로드히버(Homer A. Rodeheaver)가 1933년에 등록하였다.

 

 

163장 할렐루야 할렐루야

(J. Tisserand 작사 · 15세기 프랑스 전래곡조) ;《통일 찬송가, 1983》160장

 

이 찬송은《개편 찬송가, 1967》편찬 때 미국 초교파 찬송가인《군인 찬송가》'Armed Forces Hymnal, 1963' 216장에서 번역하여 135장에 처음으로 실렸다.

이 찬송 가사는 15세기 프랑스의 프란체스코 수도사 장 티스랑(Jean Tisserand, ?~1494)이 작사한 라틴어 찬송 'O filii et filiae, Rex coelestis, Rex gloriae' 이다. 그의 사후인 1525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영어 번역은 영국의 삭빌대학(Sackville College) 학장으로 있던 존 닐(John Neal, 1818~1866) 목사가 하여 1851년에 발행한 그의《중세 찬송가》'Medieval Hymns' 에 처음 실렸다. 곡조「오 아들딸들아」'O FILII ET FILIAE' 는 프랑스의 15세기 전래곡조다.

 

작사자 장 티스랑(Jean Tisserand, ?~1494)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1494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세상 뜬 것만 알려져 있다. 성프랜시스가 창립한 수도회 탁발수도사로서, 처음으로 여성들의 수녀원인 신심회(penitent women)를 조직한 사람이다.

 

1967년 개편 때, 장로교 출판사인 웨스트민스터프레스(The Westminster Press, Philadelphia)에서 발간한《청년 찬송가》'The Hymnal for Youth, 1941' 107장에서 번역 채택한 것이다.

 

 

164장 예수 부활했으니

(C. Wesley 작사 · 작곡자 모름) ;《통일 찬송가, 1983》154장

 

영국 감리교회의 창설자 중 하나인 찰스 웨슬리 목사가 작사한 이 부활 찬송은, 그의 형 존 웨슬리가 편찬한《찬송가와 성시》'Hymns and Sacred Poems, 1739'에 처음으로 실렸다. 제목은「부활절 찬송」'Hymns for Easter Day.' 총 11절의 찬송이었다. 최초의《감리교 찬송가, 1779》716장에는 6절로 줄였다. 8절 이후는 14세기 라틴 찬송의 번역으로서 'Lyra Davidica, 1708' 에 실려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활 찬송은 영어권에서는 가장 애창되는 찬송이다.

 

곡조 'EASTER HYMN' 작곡자는 알 수가 없다. 'Lyra Davidica' (London: 1708)에 처음 실렸다.

작곡자 찰스 웨슬리

 

웨슬리는 이 찬송을 런던에 있는 웨슬리언예배당에서 불렀다. 이 예배당은 본디 주물공장(iron foundry)이었는데, 여기서 그들이 예배를 드리자「파운드리 만남의 장소」(Foundry Meeting House)로 불리었고, 이 찬송은《파운드리 찬송모음》'Foundry Collection' 에도 포함되게 된 것이다. 이 가사에 이 곡조를 붙인 찬송은 영국의《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 134장의 'Second Tune' 으로 처음 실렸다.

 

우리 찬송가에는《신정 찬송가, 1931》67장에 차음 실렸는데, 그때 번역 그대로 지금도 부르고 있다.

 

 

165장 주님께 영광

(E. L. Budry 작사 · G. F. Handel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5장

 

스위스의 목사 에드먼드 부드리(Edmond Louis Budry, 1854~1932)가 1884년에 작사한 부활 찬송 가사에, 헨델의 곡조를 붙여서 부르는 부활 승리의 힘찬 찬송이다. 이 곡조는 헨델의 오라토리오「유다스 마카비우스」'Judas Maccabaeus' 끝막에 나오는 대합창,「보아라, 정복의 영웅이 돌아온다」'See, the Conquering Hero Comes' 로서, 유다 마카비 장군의「개선 행진곡」으로서, 중 ․ 고등학교 교과서에도「개선 행진곡」으로 실려 있는 합창곡이다. 곡명은「유다스 마카비우스」'JUDAS MACCABAEUS.'

작곡자 헨델

 

작사자는 에드먼드 부드리(Edmond Louis Budry, 1854~1932) 목사로서 스위스 사람이다. 스위스 로잔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베베이(Vevey) 자유교회에서 35년간 목회하였다. 1923년 은퇴를 앞두고, 독일 찬송을 영어로, 라틴 찬송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그의 작품들은《복음 찬송》'Chants Evangeliques, 1885' 에 수록되어 있다. 이 찬송은 부드리 목사가 불어로 쓴 'A toi la gloire' 라는 찬송으로서 로잔에서 1904년에 출판된《YMCA 찬송가》에 처음 실렸다.

 

이 찬송은 영국 침례교 목사 리처드 호일(Richard B. Hoyle, 1875~1939)이 1923년에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기독학생연맹 찬송가《깐따떼 도미노》'Cantate Domino' 28(25)장에 영-독-불 3개국어로 실림으로써 전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찬송가에 채택된 것은《새찬송가, 1962》644장이 처음이지만, 현재 번역은《개편 찬송가, 1967》편찬 때 미국《군인 찬송가》'Armed Forces Hymnal, 1963' 217장에서 번역하여 141장에 채택한 것이다.

 

 

166장 싸움은 모두 끝나고

(12세기 라틴 찬송 G. P. da Palestrina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6장

 

《신편 찬송가, 1935》86장에 처음으로 채택된 부활 찬송이가. 나는 이 찬송을 처음 부를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1944년에 처음으로 서울 명동 헌 책방에서 곡조 찬송을 사 가지고, 혼자서 이 곡조를 바이올린을 켜며 배울 때 곡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고, 부활하신 주님의 승전가 가사에 가슴이 벅찼다. 교회에서 이 찬송을 독창하자, 사람들이 모두 가르쳐달라 하여 가르치던 기억이, 60여년이 지났지만 생생하다.

이 찬송 작사자는 알 수가 없다. 12세기 라틴 찬송「싸움은 이미 끝났다」'Finita jam sunt praelia' 를 영국의 프랜시스 포트(Francis Pott, 1832~1909) 목사가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 국교회의《기도서에 맞춘 찬송들》'Hymns Fitted to the Order of Common Prayer, 1861' 에 처음 실린 것이다.

 

번역자 프랜시스 포트(Francis Pott, 1832~1909) 목사는 영국인이다. 옥스퍼드의 브레이스노스대학(Brasenose)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856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0년 동안 비숍워스( 「sworth)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으로 여러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여러 편의 찬송시를 썼는데, 신작보다는 번역자로 더 알려졌다. 1861년, 그는《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1861' 편집에 참여, 여러「기도서」에 있는 글이나, 자유 운의「시편가」들을 운문으로 번역하여 넣었는데 이 찬송도 그 중의 하나로서 135장에 실려 있다. 1891년에 귀가 안 들려 은퇴하였다.

 

곡조「승리(팔레스트리나)」'VICTORY(Palestrina)'는 'Victory' 라는 곡명을 쓰는 사람이 많아서 일일이 작곡자의 이름을 괄호 안에 표기한 것이다.

죠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 da Palestrina, 1525~1594)가 1591년에 작곡한「마니피카트」'Magnificat Tertii Toni, 1591' 곡조를 1861년에 윌리엄 몽크(William H. Monk, 1823~1889)가 이 가사에 맞춰 편곡하여,《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1861' 135장에 처음으로 실린 것이다.

 

작곡자 팔레스트리나(Giovanni P. da Palestrina, 1525~1594)는 아마도 로마 근처의 팔레스트리나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서 죽어 바티칸 성 베드로대성당에 묻혔다. 그는 코랄음악 작곡가로서 크게 존경받는 사람이다. 코랄 외에도 미사곡, 마드리갈(madrigals), 그밖에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작곡자 팔레스트리나

 

편곡자 윌리엄 몽크(William H. Monk, 1823~1889)는 영국 사람이다. 1874년에 킹스칼레지의 성악교수가 되었다. 1876년에는 국립음악학교 교사가 되었고, 1878년부터 베드포드대학(Bedford College)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0여년 동안 여러 교회의 찬양대 감독으로 있었으며, 특히 영국의《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 편집 때 음악위원장으로 일하면서 135장에 이 찬송을 처음으로 실렸다.

 

 

167장 즐겁도다 이 날

(V. H. Fortunatus 작사 · F. R. Havergal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7장

 

《신편 찬송가, 1935》300장에 처음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이 찬송은, 역사 깊은 찬송이다. 주후 590년경에 베난티우스 포르트나투스(Venantius Honorius Clementianus Fortunatus, c.530~609) 신부가 작사하여「즐겁도다 이 날」'Salve, festa dies' 이란 책에 처음 발표한 라틴 찬송이다.

「성전을 떠나가기 전」을 작사한 존 엘러튼(John Ellerton, 1826~1893) 목사가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증보판 곡조 찬송가》'Supplemental Hymns and Tune Book, 1868'에 처음으로 실었다.

 

작사자 포르투나투스(Venantius Honorius Clementianus Fortunatus, c.530~609) 신부는 어려서 예수를 영접하였다. 학창시절 그는 거의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눈이 나빴다. 그러나 성마틴교회 제단 램프의 불을 켤 적마다 그 기름을 눈에 발랐더니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되었다 하여, 이 성당순례를 사람들에게 권장하였다고 한다. 그는「동정녀 무오설(無誤設)」을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찬송은「부활절에 행복한 감독에게」'Ad Felicem Episcopum de Pasche' 란 제목으로 쓴 110행의 시인데, 프랑스 낭트(Nantes)의 페릭스 감독에게 보낸 것이다. 그 중에서 예배의식에 맞도록 추려낸 것이다.

 

곡조는 영국 목사의 딸인 프랜시스 해버갈(Frances Ridlely Havergal, 1836~1879) 양이 작사 · 작곡한「금 거문고 타며 노래하는 곳」'Golden Harps are Sounding' (합동 찬송가 138장) 곡조다. 곡명 'HERMAS' 는 로마서 16:14에 나오는 바울의 친구「허마」이름에서 딴 것이다. 1871년, 프랜시스의 아버지 윌리엄 해버갈이 출판한《시편가》'Psalmody' 에 처음 실렸는데, 힘차고 장엄한 이 곡조에 많은 찬송 작사자들이 가사를 붙였다. 행진곡풍인 이 곡조는「행렬찬송」'Processional Hymn' 으로도 쓰인다. 작곡자 프랜시스는 찬송가 작가 윌리엄 해버갈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찬송가 역사상「찬란하나 요절한 촛불」'bright but short lived candle' 로 기록되었다. 찬송가 작가인 존 카우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4살에 글을 읽었고, 7살에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라틴어와 헬라어 그리고 히브리어도 잘 했다. 그가 작사 혹은 작곡한 찬송 70 여 편이 웹사이트에 올라 있다. 우리 찬송가에도 다음 9편 이 채택되었다.

작곡자 해버갈 양

 

① 167장 즐겁도다 이 날 (작곡)

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작사)

③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작사)

④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작사)

⑤ 329장 주 날 불러 이르소서 (작사)

⑥ 331장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작사)

⑦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작사)

⑧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작사)

⑨ 487장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작사)

 

 

168장 하늘에 찬송이 들리던 그 날

(J. W. Chapman 작사 · C. H. Marsh 작곡) ;《통일 찬송가, 1983》158장

 

이 찬송은 성결교단의《부흥성가, 1930》237장에 처음 채택된「그 어느 날」'One Day' 이라는 제목의 부활절 찬송이다. 미국의 유명한 장로교 부흥사 존 채프먼(John Wilbur Chapman, 1859~1918) 목사가 1908년 찬송시 2편을 작사하여, 그의 부흥집회 때 반주자였던 찰스 마쉬(Charles Howard Marsh, 1886~1956)에게 작곡을 부탁하여 만든 찬송 중에 이 찬송이 있다.

1983년 통일할 때 마지막 수정을 내가 했는데, 영어 가사를 1절만 소개하며 일부 수정을 해본다.

 

One day when Heaven was filled with His praises,하늘에 찬송이 가득 찬 그 날

One day when sin was as black as could be,죄악이 가득 찬 그 날 밤에

Jesus came forth to be born of a virgin,동정녀 몸 빌어 이 땅에 오사

Dwelt among men, my Example is He!인간과 함께 한 우리 주님

 

Refrain<후렴>

Living, He loved me; dying, He saved me;살아서 사랑 죽어선 구원

Buried, He carried my sins far away;묻혀서 내 죄를 담당하사

Rising, He justified freely forever;부활로 우리를 구하신 예수

One day He’s coming ~ O glorious day!다시 오시리 그 영광의 날

 

후렴은 참으로 걸작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후렴에 다 함축되어 있다.

 

살아 계실 때는 나를 사랑해주셨고, (Living, He loved me; )

죽으심으로 날 구원하셨다. (Dying, He saved me;)

무덤에 묻히심으로 내 죄를 깊이 묻어주셨고, (Buried, He carried my sins far away;)

부활하심으로써 나를 거룩케 하사 영원한 자유를 주셨다. (Rising, He justified freely forever;)

그 언젠가, 주님은 재림하신다. 오! 영광의 그 날이여! (One day He’s coming-O glorious day!)

 

작사자 채프먼(John Wilbur Chapman, 1859~1918) 목사는 1879년에 레리크포어리스트대학(Lake Forest Univ.)을 졸업하고 장로교 목사로 안수 받았다. 처음에는 작은 교회 둘을 맡아 돌보다가 1883년에 네덜란드개혁교회 목사가 되었다. 1890년 필라델피아의 베다니장로교회로 자리를 옮겨 성공적으로 사역을 하여, 1917년에는 총회장이 되었다. 그 동안 전국을 돌며, 캠프집회 같은 대형 옥외집회를 지양하고, 성경교육에 중점을 둔「사경회(査經會)」식의 부흥집회를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는 동안 틈틈이 영감을 받아 찬송시를 써서 8권의 저서 중에 포함시켰는데 이 찬송도 그 중의 하나다.

 

작곡자 찰스 마쉬(Charles Howard Marsh, 1886~1956)는 미국 아이오와에서 감리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아노 재질이 뛰어난 그에게 챔프먼 목사는 그의「위노나호수 셔토쿼와 성서협의회」'Winona Lake Chautauqua and Bible Conference' 반주를 맡겼다. 1915년부터 4년 동안 그는 로스앤젤레스의「성경학교」에서 교사로 있었고, 1919년부터 7년 동안 레들랜즈대학(University of Redlands)에서 가르쳤다. 1920년에 프랑스로 가서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유럽식「음악 및 예술학교」'School of Music and Art' 교장이 되어 1928년부터 4년간 있었다. 1932년부터 제1장로교회 오르간 주자가되어 섬기다가, 플로리다대학에서 오르간 교수로 일하기 위하여 플로리다로 이사하여 플로리다침례교회 오르간 주자 및 찬양대 감독이 되었다. 1935년 캘리포니아로 이사하여 'Federal Music Project' 잡지 주간으로 4년 동안 일하였다. 거기서도 제임스해변감독교회 오르간 주자로 20년 동안 섬겼다. 곡명「채프먼」'CHAPMAN' 은 작곡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서,《침례교 찬송가》'Baptist Hymnal, 1956' 위원회에서 붙인 것이다.

 

작곡자 채프먼 목사

 

아 찬송은 1908년 이후에 작사 작곡 되어 부흥회에서 불리었는데, 출판사 사이의 경쟁으로 판권 등록이 1909년, 1910년 등으로 나뉘어졌었다.

로드히버 홀맥 출판사(The Rodeheaver Hall~Mack Co.)가 발행한《찬양과 권능의 새노래》'New Songs of Praise and Power 1-2-3 Combined, 1921' 169장 판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MCMX, by Chas. Marsh, Charles M. Alexander. owner. 그러니까 작곡자와 알렉산더란 사람이 팡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는 판권 연도가 기록 안 되어 있다.

한편 킹스버리(F. G. Kingsbury)가 편집한《찬양의 찬송들》'Hymns of Praise 1922' 172장의 판권을 보니, 찰스 알렉산더(Charles Alexander)가 1910년에 단독으로 획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New Songs of the Gospel, numbers 1, 2, & 3 combined, 1909 Hall-Mack' 에도 이 찬송이 실려 있다는 웹 문서를 발견했으나, 불행하게도 이 책을 구할 수가 없어 판권 소유자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빠른 판권 등록 연도는 1909년이라는 결론이다.

 

출처 : 맹꽁이의 찬양
글쓴이 : 오소운 맹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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