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기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
고린도전서14장39∼40절 |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 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
방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50일 만에 예수 님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강한 바람 같은 소 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있더니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베드로가 이달리야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자들 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 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 에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그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안수하매 성 령이 임하시므로 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 니다. 현대 오순절 사건은 1901년 1월 1일 미국 캔사스주 토페카시에 있는 벧엘성서 신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5년 후인 1906년 4월에 아주사거리에서도 놀라운 성 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토페카 성령의 역사와 아주사거리의 부흥은 모두 성 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 오늘날까지 100여 년이 넘도록 온 세계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1. 방언은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 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또한 33절에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 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 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감화 감동하여 우리 마음에 임하신 것 과 성령 세례 받는 것은 서로 다른 체험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눈으로 보 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만에서 가장 큰 침례교 목사님인 주연아 목사의 간증입니다. 주 목사님은 중국 본토가 공산당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상해에서 신학교를 다녔는데, 중국이 공산화되기 시작하자 그들은 위기감에 의해 모든 신학 공부를 중단하고 강단에 모여 하나님께 성령의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우리를 이 위험에서 건져 주옵소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이 난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라며 모두가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전교생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상해신학교 학생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두 방 언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길 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고 이제 중국이 공산화가 되었을 때도 그들은 엄청난 핍박 중에도 지하에 내려가 끊임 없이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 중국에서는 복음이 사 라지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이제 오늘날 중국이 복음을 증거할 자유가 주어졌 을 때, 온 중국 전체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방언을 말하느냐고 묻습니다. 먼저 우리가 방언을 말하게 되면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확신이 우리 마음속에 생깁니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 기 위해 오래 기도할 때 어떤 때는 성령으로 충만한 것 같아 기쁨이 넘치지만 또 어떤 때는 성령을 받은 것이 모호한 것같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마음속에 확증이 생깁니다. 사도들이 성 령 받고 방언을 말한 것처럼 우리도 방언을 말했으니 이제 우리는 성령 받은 사 람이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럴 때 이제 우리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방언은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전 서 14장 14절에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 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기도를 알아듣 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방언을 말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이 는 방언기도란 우리의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 람 사이에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단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처럼 방언기 도는 우리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고 사단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비밀하게 하나님 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성세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많 습니다. 젊은이들은 선생님을 ‘샘’이라 말합니다. 정말 좋다, 최고라는 의미 는 ‘짱’이라 하여 얼굴이 예쁘면 ‘얼짱’, 몸이 좋으면 ‘몸짱’이라고 말합 니다. 또한 반갑다는 말은‘방가’라 하는 등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이 무 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썰렁하다’는 말은 재미 없다는 말입니다. ‘얄딱 꾸리하다’는 말은 이상하다는 뜻이고 ‘열받는다, 뚜껑이 열린다’는 말은 화 가 난다는 말입니다. ‘초딩, 중딩, 고딩’이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란 말입니다. 도무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만의 의사소통 용어로 컴퓨터나 핸드폰 문자를 보내는 것은 더욱 기가 막힙니다. 글자는 하나도 없고 기호나 그림 같 은 것을 서로 주고 받는데, 우리가 보면 무슨 뜻의 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 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끼리는 서로 잘 통합니다. 그것이 그들만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방언을 말하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만 통하는 말이 됩니 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게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사단이 알면 미리 방해를 하기 때문 에 안됩니다. 우리가 말로 기도하면 마귀가 알아듣고 미리 훼방을 놓을 수 있지 만 우리의 영이 하는 기도인 방언으로 하면 마귀도 알아듣지 못하고 우리 마음 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의 속사정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과 비밀적인 언어로써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비밀의 언어가 바 로 방언입니다. 3. 방언은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덕이란 말은 헬라어로 ‘호이코스 데로’라 합니다. 여기서 ‘호이코스’란 ‘집’이라는 말이고 ‘데 모’란 ‘집을 지어 올라간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자 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 신앙의 집 이 점점 강하게 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방언을 많이 할수록 마음속에 믿음의 기운이 꽉 들어차게 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해외에 나가서 선교할 때 대중 앞에서 귀신도 쫓아 야 하고 많은 병자를 고쳐야 하는데, 그 때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가득 찹니다. 이처럼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차 있으면 말씀이 있 어도 실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30분이나 1시간 기도하고 나면 내 신앙의 덕이 쌓아져 신앙의 기가 꽉 들어차게 되고 담대하게 대중 앞에서 두 려움 없이 서게 됩니다. 그럴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치료 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 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모릅니다. 방언기도는 우리 신앙의 덕을 쌓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꽉 들어차게 만 들어주는 놀라운 기도의 역사를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 을 하면 자기 신앙의 덕이 세워지고 예언을 하면 교회의 덕이 세워지는 것입니 다. 예언이란 오늘날 설교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설교를 깊이 있고 은혜롭게 하면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마음속에 믿음이 쌓아지고 힘이 생깁니다. 좋은 설 교를 들으면 믿음의 덕이 세워져 믿음이 단단해 집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들 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기도하는 것으로 방언은 자기 신앙의 집이 쌓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 신앙의 집을 자 꾸만 허물어 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마귀를 통해서 우리 각자의 신앙의 집이 헐어지고 약해지지만 그래도 우리가 방언을 말하면 우리 각자의 신앙의 집 을 계속 지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세상에 살면서 매일매일 방언 기 도를 통해 우리 각자 신앙의 덕이 꽉 들어차서 우리 자신의 신앙이 튼튼해지 고, 다른 사람에게도 신앙을 전할 수 있도록 믿음의 기가 꽉 들어찬 사람이 되 어야 할 것입니다. 4. 방언은 마음의 곤비함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사야 28장 11∼12절에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 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 으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 언”이라고 말했습니다. 생소한 입술이란, 어떤 사람이 방언한다고 하면서 “따 따따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옆에서 듣기에 그 말은 매우 생소하게 들립니 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생소한 입술’로써 방언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방언 을 말하는데, 우리가 듣기에는 어린 아이의 입술 떠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하지 만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언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상쾌함을 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 이 그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여유와 기쁨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스트레스로 마 음에 병이 꽉 들어차고 염려와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불안과 공포,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 니다. 요즘과 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불안이 클 때 모 든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슬픔 이 들어차 있을 때 서로가 조금만 잘못하면 분쟁하고 논쟁을 하게 됩니다. 어떻 게 하면 우리는 이러한 마음속에 깊이 배어 있는 스트레스와 염려, 근심, 불안 과 초조, 절망에서 벗어나 마음에 상쾌함을 가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우리에게는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우리 의식의 9/10는 잠재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을 현재에 감당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우리의 잠재의식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잠재의식인 우리 마음의 깊은 곳으로 모두 밀어 넣는 것입니다. 잠재의식에 숨 어있는 이러한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 고통, 괴로움들이 냄새를 풍깁 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혹은 실제로 머리가 아프고 관절염이 생기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소화가 안됩니다. 현실에서 는 그럴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로 인해 마음이 불안하고 그것이 신체적 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로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알 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부패하고 썩어져가 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다락 즉 잠재의식 속에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을 어떻게 청 소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는 우리가 현재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 모두 있습니 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을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잊은 것은 하나 도 없습니다. 모두 우리의 잠재의식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정 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꿈을 해석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 마음에 감추인 것들을 풀어내 주어 마음의 상처를 고치고 마음으로 인한 신체적 질병들 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방언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로써 우리 영이 우 리 심리 속에 들어가 우리 마음의 다락을 말끔히 청소해 줍니다. 성령이 방언이 란 빗자루를 들고 우리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재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과 초조, 절망, 미움과 원한, 상처 입은 것을 모두 청소해주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충분히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해지는 것 입니다. 방언기도를 오래 하면 마음이 아주 상쾌하고 날아갈 듯 기뻐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다락이 청소가 되고 깨끗해지면 마음속 에 향기가 나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종교단체에서는 방언을 말하 는 사람들 중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라고 발표했습니 다. 방언 기도를 하면 정신병을 유발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가 모두 치료되고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 기도를 통해 마음 깊은 곳의 다락을 깨끗이 청소하고 치료하면 우리는 상쾌하 고 평안하고 즐거운 긍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 방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이다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바울 선생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 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 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미래에 대해 우리는 한 치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 앞날에 무 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로 우리는 불확실한 상 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도 와주시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친히 오셨습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 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므로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 도할까요? 성령의 기도는 바로 방언 기도입니다. 방언을 통해 탄식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권사님 한 분이 종로구역에 구역예배를 인도하러 가는데 길에서 갑 자기 마음 속에 기도해야 되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생기는데, 복잡한 종로길에 어디에서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권사님은 길거리 구석에 쪼그 리고 앉아 기도를 하는데, 무슨 기도를 할지 모르겠더랍니다. 마음에 간절히 갈 급하여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긴 해야겠는데, 무슨 기도를 할 지 몰라 방 언으로 기도했습니다. 한참을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평안해져서 눈 을 떠보니 주위에 사람들이 권사님을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 가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이상한 말을 하니까 아마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권사님은 황급히 일어나 구역예배를 드리기 위해 종종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구역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권사님은 하 나님께서 아까 길에서 왜 그리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셨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했 습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그만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권사님이 없 는 동안 도둑이 들어와 집을 털었는데 옷가지들이 마당까지 널부러져 있었던 것 입니다. 방안에 뛰어 들어가니 장롱 문이 열리고 서랍들이 삐져나와 그 안의 옷 가지들이 모두 흩어져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님! 이제 저는 남편에게 맞아죽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경찰 관으로 평소 제가 신앙생활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돈과 귀금속을 교회에 갖 다 주었지’라며 의심해 왔는데 이제 어찌합니까”라며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 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장롱 속을 들춰 보니 도둑이 옷가지들을 들춰 놓았으면 서도 그 안에 있던 귀금속과 현금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둑의 눈을 가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구역예배 가는 권사님을 통 해 길에서 기도하도록 하시면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하도 록 해서 기도하는 동안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천사가 도둑의 눈을 막아 도둑 은 눈뜬장님이 되어 옷가지들을 들췄지만 돈과 귀금속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 입니다. 권사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남편과 교회에서 간증하였 고, 교회 다닌다고 핍박하던 남편도 결국 회개하고 교회로 나아 예수님을 영접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간절히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의 갈급함이 생길 때가 있 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 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 맡기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 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 방언은 통역이 따르면 예언과 같다 고린도전서 14장 13절에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 니”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는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통역하면 예언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방언을 하면 통역하기를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일본에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일본 여성 한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 분은 예 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난 다음 방언이 나오는데 어찌나 유창하게 나오는지 마음에 겁이 조금 나더랍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은 평소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당시 동생은 이태리 로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더욱 열심히 방언으로 기도하며 동생의 구원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 루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는데 전화 신청을 한 다음 갑자기 방언기도가 나오는 데 미처 중단할 수가 없더랍니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는데도 이분은 계속 방언 으로 기도를 하다가 그만 방언이 뚝 그쳤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전화를 받고 들 려온 누나의 방언소리에 놀라 “누님! 뭐라구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본의 성도님은 그간 자신이 교회에서 성령을 받고 방언 받은 것을 이야기 하며 지금 바로 그 방언이 막 쏟아져 나오는데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며 미안 하다고 동생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누나에게 미안할 것이 없다면 서 지금 누나가 분명한 이태리 말로 자신에게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 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너희 죄를 용서하 고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니 더 지체하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고 누나가 자 신에게 이야기했다며 더욱 놀라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누님인 이 성도님은 평소 이태리 말을 한자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동생은 누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순절 날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할 때 이방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국의 말로 알아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방언을 직접 통역할 경우 도 있습니다. 방언은 개인 신앙의 덕을 쌓아 나가는 것이지만 또한 통역을 통 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방언기도를 하고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방언 통역을 주십니다. 7.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 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선생은 참으로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이십니다. 기도는 오 래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욱 신령해지고 더욱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려면 오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래 기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바울 선생은 “내가 아는 말로 기도하고 영으로 방 언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찬송하고 영으로 방언으로 찬송한다”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오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 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바로 방언기도를 말하 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기도와 가족을 위한 기도, 교회 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고 나면 기도할 것이 없는데, 많이 기도했다고 생각하 고 시계를 보면 불과 몇 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 게 30분에서 1시간, 3시간 동안을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방언으로 기도하 기 때문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한참 기도하면 또 은혜를 받아 다시 아는 말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지치면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밤새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렇게 기도하면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이고 계속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 언기도는 기도의 언어로 매우 좋은 것입니다.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변화 받고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1시간 이상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오 기 시작합니다. 오래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놀라운 기도의 언어입니다. 바울 선생은 누구보다 자신이 방언을 많 이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서 그는 “내가 너 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바울 선생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방언을 하고 여행을 하거나 천막을 지으면 서도 방언을 말했습니다. 방언 기도는 우리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 이 성령을 통해 하시는 것이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할 수 있습 니다. 우리가 마음에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면 언제 오는지 모르게 성령이 임하십니 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 하기 시작하고 또 성령이 방언 기도를 주시면 이를 통해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큰 유익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방언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인데 왜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는 충분히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줍니 다.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 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의심도 생기고 마귀의 공격도 받아 신앙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앙의 체험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아버지 비밀의 병기인 방언으로 말하 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방언을 통해 성령이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심으로 우 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므로 이 악한 세대 에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출처] 방언기도의 유익 (조용기목사 설교)| |